[강호갑 칼럼] 기업인은 존중받고 있는가
학형(學兄)! 어느덧 세 번째 글을 전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할 말이 많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큰 질타가 없는 것을 보면 이심전심으로 받아주시는 것으로 편하게 생각하고 또 씁니다.

기술혁신과 혁신성장, 그리고 반드시 성취해야 할 지속가능성의 특이점을 찾아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나라가 국가역량과 사회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것을 목도(目睹)하는 요즘입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국가발전을 꿈꾸는 나라라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달프게도 작금의 우리 앞에는 이런 도전을 짓누르는 많은 요인이 산적해 있고, 오히려 그 해결이 급선무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요인들이 야기한 수많은 갈등과 편견의 폐해는 이미 개인과 국가가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해치고 있다고 상당히 걱정해야 하는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기업은 물론 거시적인 산업, 사회 생태계에 속한 모든 주체가 더 이상 외면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될 일들입니다.

서울 마포대교를 점거한 건설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선량한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 손님들도 혹한을 뚫고 걸음을 옮겨야만 했던 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공권력 부재의 시대 상황, 해고된 근로자가 버젓이 노조원으로 돌아와 불법·강제적으로 생산라인을 멈춰 세워 지대한 손실을 입혀도 어떤 대응조차 할 수 없는 산업현장, 아무런 대안도 없이 유례없는 규제 법안들을 특권인 양 양산하는 특정 주체들과 정치권, 독립성과 사회 정의마저 의심되는 사법 현실, 대학 총장이 직접 절박한 심정으로 ‘혁신’을 외면한 한국의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할 거라 한탄하는 상아탑의 실상…. 대한민국 기업인들이 직면한 이 시대 우리 경제, 산업, 사회 생태계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생동하는 기업과 산업, 그리고 시장은 특정한 이론의 실험장이 아닙니다. 삶의 현실이자 생존의 근거지입니다. 이곳에서 삶과 생존의 무게를 덜어낼 권한은 아무에게도 위임되지 않았습니다. 누구라도, 무엇을 하든지 행사하는 권리와 권력에는 반드시 의무와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잘못된 법률, 정책과 제도의 실행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든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폭넓고 투명한 숙의에 기초해 합리적으로 책임을 감당케 할 원리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우리 사회의 혁신과 성장,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우선의 과제입니다. 미래의 명암을 가를 과제입니다.

지난 10월25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한 한국계 동포기업인 모임에서 한창우 마루한 회장을 만났습니다. 한참의 얘기 끝에, 혈혈단신 밀항한 일본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으로서 큰 성과를 일궈낸 비결을 물었습니다. 차별과 멸시로 가득했을 아득한 타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성공하고 존경받게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한 회장의 대답은 단순했고 가슴을 멍하게 하는 울림이었습니다. “인격과 교양을 향상시키고, 진심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애썼다”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의 격랑을 헤치며 독보적인 성공신화를 일궈 왔습니다. 비록 명암은 있을지언정, 대다수 기업인은 인격과 교양 함양, 지역사회 성실 봉사를 넘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지금 이 땅에서 ‘차별’과 ‘멸시’를 넘어, 과연 얼마만큼 ‘사랑’과 ‘존중’을 받는지 한 번쯤은 묻고 싶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의 몫입니다. 대다수 근로자의 일자리를 우리 기업들은 지켜야 합니다. 기득권과 새로운 특권들이 발호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학형! 인공지능(AI) 시대의 가장 큰 공포는 ‘로봇의 사람화’가 아니라 ‘사람의 로봇화’라고 합니다. 인간 스스로 설정한 유연하고 보편적인 가치가 획일화되고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또 한 해를 보내며 학형이 품은 인간 가치의 곧고 바른 결이 우리의 빛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강호갑 <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