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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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까지만 해도 메리츠종금증권은 증권업계에서 ‘변방의 증권사’ 정도로 여겨졌다. 자기자본 규모는 5000억원대, 순이익 규모는 200억원대에 불과했다. 60여 개 국내 증권사 중 자기자본으로는 16위, 순이익으로는 30위권에 그쳤다.

변화가 시작된 건 2010년 메리츠증권이 메리츠종합금융과 합병하면서부터다. 종금형 수신상품(CMA)이나 발행 어음을 통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 공격적인 여신업무에 나서면서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부동산금융 특화 증권사로 자리매김하면서 차별화된 영역을 구축했다. 부동산금융으로 돈을 끌어들일 때 경쟁사들은 “사업 방식이 너무 위험하다”며 무시했다. 성과급 비중을 높여 인재를 끌어모으자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메리츠종금증권은 2014년부터 꾸준히 매년 두 자릿수 자기자본이익률(ROE·순이익/자기자본)을 내고 있다. 증권업계에서 유일하다. 무시와 폄하는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최근 2~3년 새 메리츠종금증권의 성공 비결은 증권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올해 자기자본을 3조원까지 불려 종합금융투자사로 발돋움한 메리츠종금증권은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의 도약도 준비하고 있다.

한발 앞선 미래 준비

메리츠종금증권의 순이익은 2014년(1447억원)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었다. 이듬해엔 그 두 배에 가까운 순이익(2873억원)을 올렸다. 2015년 메리츠종금증권의 ROE는 22.62%에 달했다. 증권업계에서 특정 증권사가 ROE 20%를 넘어선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해는 2015년 세운 연간 최대 실적 기록을 깰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올해 순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3329억원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종금업 면허(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유일한 증권사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종금업 라이선스 유효기간은 2020년 3월까지로 돼 있다. 끝이 예고돼 있었기 때문에 메리츠종금증권은 일찌감치 종금업 라이선스 반납 이후를 준비했다. 종금업 라이선스 없이도 기업 신용공여(대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최근 수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자본을 3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먼저 미분양담보대출확약(미담확약)에 적극 나서 부동산금융 부문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미담확약은 건물이 지어진 뒤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이를 담보로 금융회사가 사업자에게 대출해줘 기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갚도록 하는 약정이다.

미분양이 나지 않으면 대출 없이 수수료만 받는다. 증권사는 미담확약 100%를 영업용순자본비율(NCR)에서 차감해야 하지만 종금업도 함께하고 있는 메리츠종금증권은 대출액의 8%만 차감하면 돼 다른 증권사보다 유리했다.

탄탄한 수익기반을 만들어 놓은 뒤 2014년부터 자본 확충에도 본격 나섰다. 2014년 말 아이엠투자증권을 인수하고 처음으로 자기자본 1조원(1조771억원)을 넘겼다. 그해 8월엔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했다. 작년 말엔 메리츠금융지주가 보유한 메리츠캐피탈을 자회사로 편입해 자기자본을 2조3000억원대로 늘렸다.

지난 6월엔 7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해 자기자본을 3조원 이상(9월 말 기준 3조2242억원)으로 끌어올렸다. 자기자본이 증가하는 가운데에도 작년까지 이전 3년간 평균 ROE는 17%대로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올 3분기에도 메리츠종금증권은 898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한 2분기(980억원)보다는 소폭 줄었지만 전년 동기 대비 42.6% 증가한 규모였다. 순이익으로만 보면 미래에셋대우(1343억원), 한국투자증권(1317억원)에 이어 국내 ‘빅3’ 증권사다.

조직문화가 최대 경쟁력

자본 확충 과정에서 체질 개선도 병행했다. 아이엠투자증권과의 합병을 앞두고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전체 영업점 수는 줄이되 초대형 거점 점포체제를 구축해 효율성은 높였다. 직원이 올린 수익의 절반을 성과급으로 돌려주는 파격적인 성과급 지급 시스템도 만들었다.

뱅커스트러스트, CSFB(Credit Suisse First Boston),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IB에서 일하다 2009년 메리츠종금증권에 영입된 최희문 사장이 실용주의 조직문화의 ‘씨앗’을 뿌렸다. 메리츠종금증권에선 모든 업무가 실무자 중심으로 이뤄진다. 서울 여의도 사옥엔 다른 회사처럼 임원 사무실이 모여 있는 ‘임원층’이 없다. 관련 업무를 하는 팀과 부서에 부사장 등 임원들이 일하는 임원실이 함께 있다.

대리가 부장에게 보고하고 부장이 본부장에게 결재받는 과정도 없다. 보고를 위해 일정을 잡고 결재받기 위해 기다릴 필요도 없다.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수시로 필요한 사람과 직접 소통한다.

최종 결정은 매주 두 차례 열리는 ‘딜(거래) 리뷰(검토) 회의’에서 내려진다. 과장이나 차장 등 관련 딜 실무자가 참석해 사장, 부사장과 직접 토론한다. 빠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다.

최고리스크책임자(CRO)까지 참석하는 이 회의에서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면 원하는 딜을 추진할 수 없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가장 전문가’라는 게 최 사장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성과 평가에도 이를 반영했다. 성과가 날 때 본부장이 대부분의 공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팀원 개별 평가로 인사의 공정성을 높였다. 이 회사는 차장, 부장급에서도 5억원 이상 받는 고연봉자가 수두룩하다. 인재를 수시로 영입하면서도 인력 유출이 거의 없다.

회사 관계자는 “최 사장이 2010년 최고경영자(CEO)가 된 뒤 8년째 수장을 맡으면서 조직문화의 틀을 세우고 자리잡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능력을 보고 전문경영인을 선임하면 믿고 맡기는 조정호 메리츠종합금융지주 회장 스타일이 통했다는 게 증권업계 평가다.

최 사장이 장기간 회사를 맡으면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기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 아래 긴 호흡으로 경영할 수 있는 토양이 자리잡았다. 이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자기자본을 4조원으로 늘려 초대형 IB로 거듭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덩치가 커지더라도 지금과 같은 메리츠종금증권 경영 방식은 유지할 것이란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김기형 메리츠종금증권 종합금융투자사업총괄 부사장은 “지금까지는 제한된 자기자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수익성 높은 분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며 “앞으로는 늘어난 자기자본으로 모험자본 공급 대상을 다양화하고 해외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