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 기업의 구조조정 2.0’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이 선제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종군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본부장, 조기연 알릭스파트너스 부사장, 김성조 금융위원회 기업구조개선과장, 정용석 산업은행 구조조정담당 부행장, 정영환 알릭스파트너스 대표, 김유식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 위원장.  /알릭스파트너스 제공
23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 기업의 구조조정 2.0’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이 선제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종군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본부장, 조기연 알릭스파트너스 부사장, 김성조 금융위원회 기업구조개선과장, 정용석 산업은행 구조조정담당 부행장, 정영환 알릭스파트너스 대표, 김유식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 위원장. /알릭스파트너스 제공
“국내 상장회사의 16%가 2년 내 자본잠식, 상장폐지, 법정관리 등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적인 구조조정전문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정영환 한국 대표는 23일 “국내 150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 이 중 10%는 여덟 분기 이내에 부실화될 위험이 높은 기업으로 분류됐다”며 “세 분기 안에 부실화될 기업도 6%에 달했다”고 밝혔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사와 공동 개최한 ‘한국 기업의 구조조정 2.0’ 세미나에서다. 이날 세미나에는 정부, 채권은행, 기관투자가, 사모펀드, 증권사, 기업, 로펌 구조조정 담당자들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경기 바닥치고 올라오는 지금이 선제적 구조조정 골든타임"
정 대표는 “1997년 외환위기를 한국 산업계의 ‘심장마비’라고 한다면 지금은 암세포가 몸에 퍼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초저금리 환경 속에서도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부채비율이 낮기 때문에 금융회사 채무 조정만으로는 회생하기 힘든 구조”라고 진단했다. 그는 “선제 구조조정이 필요하며 그나마 경기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있는 지금이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정용석 산업은행 구조조정담당 부행장 역시 “5~6년 안에 선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매우 힘들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부실기업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손실 분담을 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행장은 “예를 들어 대주주가 평소에 이익을 근로자들과 합리적으로 공유하면 위기가 닥칠 경우 근로자들도 손실 분담에 동참할 것”이라며 “손실 분담은 법이나 제도로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행으로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식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관리위원장은 “어떤 경영철학을 가진 사람이 구조조정을 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냉정한 경영 계획을 세우고 빠르게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의사가 환자 상태를 냉정하게 진단해 한번에 치료해야 하는데 헛된 희망을 가지면 결국 수술을 여러 번 해야 한다”며 “기업도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영계획을 세워놓고 달성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종업원의 사기와 의욕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대우자동차와 STX팬오션 법정관리인을 지낸 구조조정 및 기업개선 전문 경영인이다.

서종군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본부장은 “채권은행과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은 기업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며 “다양한 시각을 가진 자본시장 참가자들이 구조조정 시장에 진입하면 부실기업 인수합병(M&A)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성장금융은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 사모펀드를 비롯한 자본시장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연내 8조원 규모의 ‘기업 구조혁신 펀드’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서 본부장은 “채권은행과 달리 사모펀드는 3~5년 뒤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 재편을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큰 고민은 일자리”라며 “일자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투자하는 운용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 정책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대부분 국가는 해운사들이 운항을 계속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업계 통폐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등 해운업 경쟁력 강화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선 한진해운 파산으로 7조원의 운임 매출이 사라지고, 국내 수출 기업의 운임이 상승하는 등 큰 국가적인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