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반도체 매각 우선협상자 WD로 교체
도시바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기존 한·미·일 컨소시엄에 대한 우선협상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이달 말까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속한 새로운 컨소시엄과의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시바가 돌연 우선 협상자를 교체한 것은 도시바에는 채권은행단 압력이, WD는 거액 감손손실 우려 등이, 채권은행단은 거액 대손충당금 우려가 작용했다고 한다.

지난 17일 도시바의 제안으로 갑작스럽게 열린 채권은행단과의 회의에서 "8월중 매각계약을 안하면 자금을 계속 댈 수 없다"는 채권단의 최후통첩이 있었다.

도시바에 제공한 주요 채권은행의 융자총액은 6800억 엔(약 7조 원)이다. 도시바는 미국 원자력발전 자회사였던 웨스팅하우스(WH)에 대한 보증금 6500억 엔을 융자로 충당하려 했다.

채권단의 최후통첩은 도시바 내부에서 난항인 매각협상을 중단하고 반도체자회사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플랜B'를 만지작 거린 데 대한 대응이었다. 플랜B가 현실화되면 채권단의 융자 틀이 붕괴된다. 은행들은 거액의 대손충당금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도시바로서도 반도체사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3000억엔 규모의 설비투자가 필요한데 은행단이 등돌리면 투자여력이 약화하고 시황이 악화되면 실적에 심각한 악영향이 오는 상황을 우려했다. 8월까지 매각계약이 어렵다는 우려도 나왔다.

도시바메모리를 담당하던 경제산업성 간부가 7월 인사에서 교체된 것도 한미일연합이 미일연합으로 선회하게 된 하나의 계기로 작용했다고 아사히신문은 보도했다.

베인캐피털 등이 축인 한미일연합과의 교섭은 WD가 제3자 매각 중단을 요구하며 도시바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철회하지 않으면 한 발도 앞으로 나가기 어려운 상황도 작용했다. 대만 폭스콘으로의 매각은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정부입김 때문에 어려웠다.

이에 도시바는 WD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WD 수뇌부와 전화를 통해 "WD 진영과 매각에 합의하면 소송을 철회한다"는 얘기를 주고받았고 WD는 이번주부터 도시바메모리 사업의 자산실사도 시작했다.

WD 측도 강경 일변도로 나갈 수만은 없는 사정이 있었다. WD는 기존 도시바의 파트너였던 미 샌디스크를 2016년에 170억 달러(약19조2250억원)에 인수, 메모리사업에 참여하면서 도시바의 협업상대가 됐다.

수익이 안정되지 않으면 거액 감손손실(고정자산에서 발생하는 회계상 손실) 계상을 해야 할 우려가 있어 경영진이 주주 등으로부터 인수 시 경영판단을 지적받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WD가 제품을 조달할 수 있는 메모리 생산 거점은 도시바와 공동운영하는 일본 미에현 욧카이치공장 뿐이다. 생산업무는 도시바가 담당하고 있어, 생명선인 반도체 공급을 도시바에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장래는 예측을 불허한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인정했다. 미국 펀드 KKR과 WD가 제시한 인수금액은 1조9000억 엔으로 다른 경쟁 진영에 비해 낮고 도시바가 요구한 2조 엔에도 못 미친다.

교섭 결렬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독점금지법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WD의 자금 제공 방법이나 출자 비율은 물론이거니와 WD가 궁극적으로 도시바메모리 경영권을 노릴 경우도 문제가 된다.

도시바메모리 사업부 내부에는 WD에 대한 강한 불신감이 여전하다. SK하이닉스가 중요 역할을 하고 있는 한미일 연합이 회심의 일격 식의 반격을 도모할 가능성도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강조했다.

도시바 관계자는 "8월 31일 계약을 완료하려는 WD와의 협의가 깔끔하게 이뤄질 것이란 보증은 없다"면서 "WD와의 교섭은 무엇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고 니혼게이자이에 털어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전날 여전히 우선협상 컨소시엄의 일원이라며 확정된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우리는 여전히 (인수전에) 참여하고 있다"며 "우리 컨소시엄이 여전히 매각자와 대화하고 있으며 도시바의 반도체사업을 인수하기 위해 계속 협상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FT가 전했다.

이에 대해 도시바는 우선협상 컨소시엄 외 기업과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힌 종전 입장을 되풀이한 채 구체적인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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