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취임 100일을 맞아 한 ‘각본 없는’ 기자회견은 대체로 신선했다는 평가다. 대통령과 내·외신 기자 217명이 오케스트라처럼 마주해 국정현안을 즉문즉답해 확연히 달라졌음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형식의 파격만큼 내용도 충실했는지 아쉬움도 적지 않다.

특히 봇물 터진 복지정책의 재원마련 대책과 증세(增稅)에 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과 국민이 ‘듣고 싶은 말’ 사이에 간극이 작지 않아서다. 연일 수조~수십조원의 복지정책을 내놓았는데, ‘재원은 어떻게’란 의문은 합리적 의심에 속한다. 문 대통령은 “산타클로스 정책이 아니다”고 했지만 국민의 궁금증을 풀기엔 부족했다.

당장 재정수입과 지출을 계산기로 두드려봐도 너무 차이가 크다. 5년간 국정과제에 드는 178조원 외에 지출 항목이 점점 늘어만 간다. 건강보험 국고 지원, 최저임금 인상분 보전, 원전 중단 등은 당초 추계에 없던 것이다. 이미 200조원을 훌쩍 넘기고 얼마나 더 들지 알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5년 뒤 재정 상황도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이미 발표한 증세안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설명엔 갸우뚱하게 된다. 들어올 돈은 ‘핀셋 증세’ 순증분 27조5000억원(연 5조5000억원)과 세수 자연증가분(60조원)뿐이다. 그나마 세수는 경기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다. 나머지는 재정개혁으로 메꾼다지만 공무원 인건비, 계속사업, 국방비 등 경직성 예산이 많아 빼낼 여유도 별로 없다. 국채 발행은 ‘미래세대에 전가’라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증세 외엔 달리 해법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 대통령도 “국민이 합의하면 (증세를) 검토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이미 “서민·중산층 증세는 없다”고 공언한 터라, 또다시 ‘부자증세’를 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국민 절반 가까이가 세금을 안 내는 조세형평성은 손대지 않고, 소수의 부담만 강요하는 게 정의로운 국가일 수 없다.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과세로만 가능하다.

어떤 정부든 ‘지속가능한 국가재정’을 지킬 책무가 있다. 복지와 증세를 포함한 재원대책을 소상히 밝히고 철저히 검증받아야 한다. 이는 경기급랭, 고령화, 안보리스크 등 다양한 변수와 함께 고려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다. 일각에선 “이대로 가면 남미꼴 난다”는 얘기가 나오는 판이다. 5년 뒤 재정 계산서를 놓고 끝장토론을 못 할 이유가 없다.

차제에 기자회견 방식도 백악관처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한 없이 보충질문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궁금증이 잔뜩 남는 것은 묻는 쪽과 답하는 쪽 모두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