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소득주도 성장과 '컬리 효과'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화두로 던졌을 때 주류 경제학계는 ‘대략난감’이었다. 소득은 성장의 결과인데, 소득(분배)을 늘려 성장을 촉진한다는 가설을 납득할 수 없어서다. 입증된 선례도 없다. ‘국민 상대 경제실험’, ‘위장된 복지’, ‘마차가 말을 끄는 격’ 등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권 실세들은 ‘지지여론’을 업고 눈 하나 꿈쩍 않는다. 오히려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김수현 사회수석)는 결기와, “주류경제학 이론은 이미 효용을 다했다”(김현철 경제보좌관)는 호언을 스스럼없이 내놓는다. 경제 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간판 아젠다가 소득주도 성장이란 ‘위험한 실험’이다.

지난 100일간 문재인 정부가 펼친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대책, 통신료 인하, 건강보험 확대,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등의 지향점은 하나다. 퍼주기 비난을 듣더라도 가계소득부터 늘린다는 것이다. 최근 1주일 새 83조원의 복지 보따리를 풀었다. 과감성과 뚝심만큼은 ‘역대급’이다.

하지만 앉아서 소득이 늘어나는 마법은 없다. 몸을 억지로 늘린다고 키가 크지는 않는다. 소득은 남들과 확연히 달라야 따라온다. TV에 소개되는 맛집 주인들이 온몸으로 증명한다. 그게 아니면 세금이든, 영업이익이든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강제로 꺼내 타인에게 옮겨줘야 한다. 이는 성장이 아니라 퇴보다.

명목임금의 인위적 인상은 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계란 파동보다 더 신경써야 할 게 전·월세와 서비스가격 상승이 될 것이다. 건보료, 전기료처럼 ‘5년 거치’ 비용청구서도 차곡차곡 쌓여간다. 문 대통령이 “재원 대책 없이 산타클로스 정책만 내놓는 건 아니다”고 했지만 합리적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왜 그토록 조급하게 밀어붙일까. 성공 강박증인가, ‘숨은 의도’가 있는가. 이병태 KAIST 교수는 ‘컬리 효과(Curley effect)’를 지적했다. 편향된 정책으로 경제가 나빠져도 이를 편 정치인의 장기집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역설이다. 1914~1950년 사이 4선 보스턴 시장을 지낸 제임스 컬리는 빈곤층 이민자 표심(票心)을 겨냥해 ‘가진 자’들을 공격하고, 차별적 조세와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중·상층 주민들이 떠나고, 도시는 잿빛으로 몰락했다.

‘컬리 효과’는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도시의 승리》 저자)가 2002년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처음 제기했다. 디트로이트, 볼티모어 등 미국의 쇠락한 도시마다 민주당 출신 시장들이 수십 년 장기집권한 공통점이 있다. 재분배와 보조금으로 주민의 정부의존증이 커질수록 ‘큰 정부’를 내건 좌파 정치인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물론 소득주도 성장이 장기집권 수단으로 보이진 않는다. 문 대통령도 누구보다 경제를 살려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소득주도 성장이 ‘컬리 효과’를 발생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정책마다 고(高)비용 경제구조를 가속화한다. 외환위기도 그렇게 왔다. 지금도 강력한 노조 교섭력을 더욱 강화하고, 임금분포까지 공개하겠다는 공약에 기업인들은 경악한다.

세계가 경쟁하는 초(超)개방시대다. 대기업도 졸면 죽는다. 국내 근로자의 경쟁상대는 비행시간 5시간 안에 수억 명이 있다. 제주 부산 등 관광지는 오사카 발리 등과 경쟁해야 한다. 가성비가 떨어지면 언제든 나간다. 비좁은 국경 안에 갇힌 폐쇄적 사고로는 어림도 없다.

우리 경제는 임금만으로 성장할 만큼 작지도 않다. 안보리스크, 미·중 무역전쟁, 자동차산업 부진 등 어느 하나만 더 나빠져도 이제까지 노력이 허사가 될 것이다. 살 길은 생산성 혁신과 구조개혁, 노동개혁뿐이다. 경제적 자유가 질식하고 기업이 움츠러들어선 성장도, 고용도, 소득 증대도 기대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아직 내놓지 않은 ‘혁신 주도 성장’에 담아야 할 핵심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