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생산성 빠진 소득주도성장은 부채만 늘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지적 편견’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증거는 수용하지만 이에 반하는 증거는 배척하는 심리적 경향을 ‘확신편향’이라고 한다. 확신편향이 위험한 것은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만을 선택적으로 채택함으로써 ‘독선’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지난 25일 관계 부처 합동 ‘새 정부 경제 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임기 동안 경제 정책의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골자는 ‘가계를 중심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 수레는 ‘큰 정부’와 ‘소득주도성장’이다. 한국 경제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길이라면 낯설어도 가겠다는 것이다.

국가 정책은 기업 전략과 차원이 다르다. 기업 전략은 다소 위험이 따르더라도 큰 성공보수를 기대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컨설팅은 실패하더라도 용인되며 실패는 소중한 기업자산으로 남는다. 그러나 국가 정책은 다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남들이 안 간 길보다 다져진 길을 가는 것이 정석이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우회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소득주도성장의 ‘외국 성공사례’가 있었는지 정책으로 결정하기 전에 확인 절차를 밟았는지 여부다.

소득주도성장은 가계가처분소득을 높여 가계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줘야 소비가 늘고 경제가 선순환된다는 논리다. 소득주도성장을 격발시키는 방아쇠는 가계소득 증가다. 재정을 통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모두 같은 맥락이다. 납품단가 부당 인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역시 중소기업이 임금 인상 여력을 가질 수 있도록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올려주라는 주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결국 분배를 통해 성장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을 이끌 분배할 그 무엇(소득)은 누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의 논리 전개는, “문제(성장)를 푸는 것이 아니고 해(解·분배)를 먼저 제시하고 거기에 맞춰 문제를 내는 식”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지속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분배를 통해 창출된 소득이 다음 기(期)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분배 요구량보다 적으면 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분배를 통해 생산한 것으로, 성장에 필요한 분배 요구량을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능력에 따라 생산한 것으로 필요에 따른 분배량을 채우지 못해 실패한 사회주의 실험과 다를 바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논리적으로 완결된 구조를 갖지 못한다. 분배, 즉 소비를 출발점으로 경제를 돌게 할 수는 있지만 소비가 늘어난다고 ‘경제의 생산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산력은 자본축적량, 노동생산성, 기술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내수 진작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더라도 공급 측면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동인이 될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성장과 경기순환을 혼동하고 있다. 소득은 성장의 결과일 뿐 원천일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아킬레스건은 임금과 소득을 높이겠다면서 그 이면의 논리로서 생산성을 올리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 결정은 ‘시장의 복수’를 부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담이 늘어나는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을 위해 인상된 최저임금의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 주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급여는 고용주가 지급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외부에서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멈추는 자동인형과 다를 바 없다. 임금이 높으면 물가가 오르고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성장이 부진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성장이 지체되면 세수가 줄어든다. 소득주도성장은 부채의존형 성장이 될 공산이 크다.

‘큰 정부’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로 해석되고 있다. 국가가 전능할 수는 없다. 국가에의 의존이 타성화된 개인이 모여 이룬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부가가치는 새로 더해진 가치다. 생산돼야 분배될 수 있고 시장기회를 포착해야 일감이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창출된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