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칼럼] 정부출연연구소에 독립성과 자율성 줘야
새 정부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놨다. 과학기술 분야는 과거 노무현 정부 조직과 직전 박근혜 정부 조직의 하이브리드 형태로 비친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및 시스템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바뀌어왔다. 하지만 현장의 연구자들은 별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아무리 정부조직이 바뀐들 본질이 달라지지 않은 때문이 아닐까.

한국에서 정부 산하 연구조직의 문제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낮고, 소소한 사안까지 관료의 직간접적 간섭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연구기관장은 예산권과 인사권의 권한이 적고 임기마저 짧아 조직 장악과 강력한 혁신을 추진하기 어렵다. 현장의 연구책임자는 연구비(예를 들면 PBS(연구과제중심운영체제) 등)를 따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정작 연구에 몰두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나. 한국에서 정부조직을 어떻게 개편하든 연구소 문제가 개선될 기미가 없는 건 무엇 때문인가. 변하지 않는 관료들의 권력, 영역, 조직 확장 집착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정부조직 개편 때마다 결국은 파킨슨 법칙(Parkinson’s law)을 그대로 따를 뿐 연구현장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게 이를 말해준다.

흔히 인사권과 예산권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연구조직도 이 두 가지 없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러 차례 제도 개선을 통해 연구조직에 자율성과 독립성을 부여한다고 했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상위 정부 부서가 인사와 예산을 휘두르는 쪽으로 가기 십상이었다. 이러니 근본적인 개선이 될 리 만무하다. 이번에도 그렇게 안 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정부출연연구소만 해도 그렇다. 무엇이 바람직한 혁신인지 더욱 분명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우선 출연연의 독립성을 말하려면 먼저 전문가들이 연구소를 운영하는 체제로 가는 게 기본이다. 인력과 예산 배분권을 연구기관에 이양해야 한다. 정부는 묶음 예산(block funding)으로 연구비를 주고 PBS는 최소화(30% 이하)해야 함은 물론이다. 비전문가인 관료가 과학기술 인재의 인사를 맘대로 좌지우지해서도 안 된다. 출연연이 중장기 연구계획에 연동된 예산 및 인력 운영 계획을 세우게 하고, 이사회가 이를 승인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

자율성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 결정도 출연연의 전문가에게 맡겨야 자율성이 확보될 것이다. 외부 간섭을 받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도 조성해줘야 한다. 연구기관장의 임기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능력이 있으면 연임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 연구소 평가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요구된다. 연구개발 계획에 맞게 연구소 스스로 평가 항목을 설정하고, 전문가 그룹과 이사회에 검증받는 형태로 가야 할 것이다. 설립 목적과 기능이 다른 연구소들을 일률적인 정량적 잣대로 평가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공공 연구부문에 정부출연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 부처 산하에 숨어 있는 연구소도 적지 않다. 여기에 각 부처는 관료들의 연구관리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저마다 관리기관을 두고 있다. 공공연구와 또 이를 수행할 연구소를 혁신하려면 이들 기관의 대대적 정비도 필요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앙부처가 연구정책을 독점하던 방식으로는 공공부문에서 어떤 창의적 혁신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차제에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 부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등에 권한을 이양하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각 출연연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건 어떤가. 그 정도의 의지가 상위 정부조직 개편에 뒤따르지 않는다면 국가 연구개발체제 혁신은 백날 떠들어봐야 공염불이 될 것이다.

윤종용 < 전 삼성전자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