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중국화에 직면한 마크롱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비교되는 인물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위대한 프랑스’를 내세웠던 드골에서부터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나 나폴레옹까지 거론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회자된다. 1830년 7월 혁명의 유산으로 왕위에 올랐던 에두아르 필리프공과 견주는 건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프랑스 시민들이 왕당파와 귀족당 등 기성주의 정당을 무너뜨렸던 7월 혁명은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진정한 파괴였다. 11일 프랑스 총선에서 공화당과 사회당 등 기성 정당이 무너지면서 마크롱이 이끄는 신생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 공화국)’가 하원의석 70%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크롱을 승리로 이끈 동인은 역설적으로 글로벌화의 부작용이었다. 중국 제품이 들어오면서 프랑스의 경쟁력이 낮아진 게 큰 이유였다.

프랑스 포도밭 사재기하는 차이나머니

정작 마크롱은 마오쩌둥과 닮았다고 불리길 좋아한다. 그는 “혁신하지 않으면 자전거 바퀴에서 떨어진다”는 마오쩌둥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가 지은 신당의 이름 앙마르슈(En Marche)도 마오쩌둥의 ‘대장정(long march)’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의 글로벌화도 마오쩌둥의 전략·전술과 동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마크롱은 유럽에서 번지는 ‘차이나 공포’와 맞닥뜨리고 있다. 이미 프랑스 집값은 밀려드는 차이나 머니에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보르도 지역의 포도밭은 물론 모텔이나 호텔 등도 중국인들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작년 보르도 땅값이 전년보다 30% 올랐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파리 고급 맨션의 가격을 올리는 주범도 결국 차이나 머니다. 지난해 파리에 들른 중국인 관광객은 200만여 명이며, 이들이 쓴 여행비만 10억유로(약 1조2600억원)나 된다. 니콜라 바버레 르 피가로지(紙) 칼럼니스트는 아예 세계화(Globalization)가 미국화도 일본화도 아닌 중국화(Chinaization)라고 못박는다.

세계화가 중국화라는 시각도

중국화 바람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당장 프랑스가 200년 이상 지배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에 중국이 개입하고 있다. 이미 아프리카 국가들의 6분의 1이 중국으로부터 돈을 빌려쓴 국가다. 2000년 중국과 아프리카의 교역은 100억달러에 그쳤지만 지난해엔 2200억달러까지 불어났다. 아프리카인들의 70%가 중국인들을 선호한다는 통계도 있다. 아프리카만이 아니다. 일대일로 정책의 확산에 따라 중동이나 아시아에도 중국의 입김은 거세지고 있다. 워싱턴의 혼란도 베이징에는 덕이 되고 있다.

드골은 프랑스의 이익을 얘기했지만 마크롱은 지금 유럽연합(EU)의 이익을 얘기한다. 당장 정부 조달에서 EU 회원국들의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려는 ‘유럽산 우선구매법(Buy European Act)’을 만들고 있다. 비(非)EU 국가들의 기업들이 공공조달 계약에 접근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법안이다. 유럽 안보리도 제도화하고 EU의 재정통합도 꾀하려 한다. 스페인은 유로존의 개혁을 원한다며 벌써 마크롱 개혁을 지지한다.

마크롱의 거침없는 행보의 명분은 세계화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프랑스 우선주의, 자국 이익주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세계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마크롱은 강한 도전자를 만났다. 다름 아닌 ‘중국화’다. 마크롱이 이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주목된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