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서울대를 없애자고?
과거 노무현 정부 때 거론되던 ‘서울대 폐지’가 문재인 정부 아래서 실현될 모양이다. 새 정부가 출발하자마자 서울대를 전국의 주요 국공립대와 묶어 학생 선발, 학사 운영, 학위 수여 등을 공동 운영하자는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추진되고 있어서다. 서울대로 상징되는 경쟁 중심 교육체제, 이에 따른 학벌 서열화 사회, 금수저 계급의 학벌 세습 따위를 타파하자는 것이 이 정책이 바라는 효과일 것이다.

서울대가 없어지면 과연 한국에 학벌 서열이 없어질 것인가. 아마 연세대 고려대가 서울대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그도 없어지면 성균관대 서강대 등이 뒤를 잇지 않을까. 이들을 다 묶어 ‘전국 국공사립대 통합 대학’을 만든다면? 돈 있고 학력을 좇는 사람들은 역시 외국의 명문대학으로 자녀를 보낼 것이다.

소위 ‘금수저·흙수저 학벌 격차’는 막을수록 더 커지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이다. 그나마 서울대는 학비가 싸고 장학금도 많아 가난한 학생들에게 ‘개천에서 난 용(龍)’이 될 기회가 있는 곳이다. 서울대가 없어진다면 등록금이 1000만원에 육박하는 사립대에서 이들의 기회는 형편없이 축소될 것이다. 명문 서울대 학위를 지방 국공립대가 공유하면 그들도 ‘상향평준화’될 것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전국 30개 국공립대를 통합하면 그 산술평균만큼의 ‘하향평준화’가 초래됨이 상식적으로 예상되는 바다.

서울대 폐지안은 오늘날 팽배해지는 한국 사회의 반(反)지성주의를 반영한다. 반지성주의는 학문·이성·지식 등에 대한 불신·배척을 나타내는 사상이다. 따라서 그 산실(産室)인 일류 고교, 일류 대학, 일류 지식인 등을 기피한다. 이런 것들은 과외수업, 기타 물질적 지원이 가능한 부유층의 향유물이며 주로 기득권 계급을 세습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로 한국의 정치적·이념적 집단들은 소수의 이성적 시민보다 다수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여론을 만들고 확산시켜 왔다. 이를테면 1등을 실격시키면 나머지 선수들에게 다 우승할 기회가 생긴다는 선전 같은 것이다.

이런 반지성 사회의 치명적 문제는 우수한 집단이 만드는 사회적 가치와 성과가 폄하·배척되고 사회 각처에서 ‘일류(一流)’가 퇴출되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1등 집단은 공동체의 정신적·물질적 문명을 창조하는 주체가 되고 나머지 국민이 그 수혜자가 된다. 일류를 존중하는 국가 사회에서는 대학·기업·문화·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일류가 무수히 늘어나고 보통사람이 일류가 될 기회도 늘어난다. 이를 배척하면 궁극에는 하류 국민만 남는 저급 국가가 될 것이 자명한 이치다.

반지성주의 이념은 자연히 일류를 만드는 시장 경쟁도 매도하게 된다. 한국은 지금 좁고 부존자원 없는 땅에서 5000만명의 과밀한 인구가 국제경쟁력을 밑천으로 삼아 먹고살고 있다. 국민이 무한경쟁의 세계에 뛰어들어 백절불굴의 경쟁 근성을 키웠으며, 그 덕에 삼성·현대 같은 글로벌 일류 기업들을 탄생시키고 세계적 무역대국을 이뤘다. 향후 한국이 세계적 히든챔피언과 강건한 중소기업이 숲을 이루는 꿈을 실현하려 해도 이 경쟁적 근성에 의존해야 한다. 이런 세계적 일류를 만든 한국인의 지성은 교과서에 실어 모든 국민에게 창달해야 마땅할 일이다. 하물며 국가 제1의 지성의 산고(産庫)를 스스로 허물겠다는 처사는 실로 자해(自害) 행위며 과거 반문명 사회로 회귀하자는 어리석음이라 말할 수 있다.

정부 여당은 향후 공기업 입사지원서에 사진 부착과 출신지·학력·스펙의 기재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블라인드 채용 강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로, 지원자의 외모나 학력 대신 능력만 보고 뽑기 위함이라고 한다. 과연 당신은 직원이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과거를 이렇게 새까맣게 덮고 단 한 번 면담으로 뽑아 당신의 소중한 재산과 일생을 맡길 수 있겠는가. 정보화와 투명화가 국제경쟁력의 요체인 이 시대 우리는 얼마나 짙은 안개 속 길을 가는지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김영봉 < 중앙대 경제학 명예교수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