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일자리 상황판에서 주의할 점
어떤 정부든 일자리를 정책 목표로 선언하는 것은 그럴 듯하다. 81만 개 공공 일자리는 더욱 그렇다. 정부 고용 문제를 비판하는 필자에게 “공무원들도 세금 낸다”며 공공 일자리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하려던 모 국회의원의 몇 해 전 방송 토론이 기억난다. 다른 정치인들도 정부가 일자리를 만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정부 일자리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발흥하던 초기부터 논란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일자리는 결국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19세기 경제학자 바스티야의 《법》을 한번 읽어보시라)

정부가 한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보이는 효과’를 거둘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한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주장은 낡았지만 유효한 이론이다. 만일 전 국민을 공무원으로 채용할 경우 그 공무원을 먹여 살릴 세금은 누가 낼지를 생각해보면 이 질문은 쉽게 해결된다. 정부 일자리가 무망한 것이라는 것을 일단 깨닫고 나면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정치가 무지와 동의어처럼 들리거나 ‘일을 그르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집단 행동에 불과하다는 푸념은 안타깝지만 진실에 가깝다. 케인스는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말로 정부가 재정을 풀어 시장에 개입하는 ‘그나마의 노력’을 옹호했지만, 그렇다고 고의로 죽음을 앞당길 것까지야 없지 않겠나.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겠다는 것은 ‘선한 의지가 만들어 내는 좋지 못한 결과’라는 예고된 경로로 진행할 것이 확실하다. 더구나 상황판이 말해 줄 주요 개념들이 오독과 오해를 불러올 단어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상황판에 표현될 18개 지표 중 몇 가지만 봐도 금세 그 속보이는 사정을 알 수 있다. 취업유발계수라는 널리 오독되고 있는 지표도 그런 사례다. 취업유발계수에 대한 오독은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종종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조차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산업의 고용을 장려해야 한다는 무식한 주장들이 난무하곤 했다. 문재인 정부의 취업유발계수도 필시 그렇게 거꾸로 읽힐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이 지표는 얼른 보면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산업에서 고용 여력이 크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취업유발계수는 농업 31.2명, 사업서비스 28.3명, 음식숙박 25.9명 등이다. 반대로 운송장비 7.9명, 전기전자 5.3명, 1차금속은 4.8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찬찬히 보면 알게 되는 것이지만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곳은 한마디로 생산성도 낮고 그래서 소득이 낮은 낙후산업이거나 비정형의 골목상권 직종들이다. 반대로 취업유발계수가 낮은 곳은 생산성이 높고 대기업이며 고학력이 요구되는 좋은 일자리다. 이런 일자리가 늘어나는 경제야말로 성장하는 경제이고, 고도화되는 경제이며, 사회 발전이 수반되는 일자리요, 국민소득 5만달러로 나아가는 일자리다.

근로시간은 더욱 오도된 개념이다. 한국이 최장 근로시간에 신음한다는 좌익적 신화는 통계 오독이 부른 허무한 참사다. 독일 네덜란드 등 근로시간이 짧은 나라는 대부분 단시간 근로자가 많다. 비정규직이 늘어날수록 근로시간이 짧아지는 역설이 작동한다. 자,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자는 것인가. 더구나 근로시간 통계는 관리직과 전문직에 대한 적용 사례에 차이가 커 이것만으로는 실상조차 알기 어렵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년들의 분노를 선동한 임금격차 통계도 오독이 많은 통계다. 네 명이 일하는 경제에서 상위 한 명은 400원의 임금을 받아 하위 한 명 100원의 네 배를 받고 있다고 하자. 이때 50원의 임금을 받는 한 명이 추가로 취업해 총취업자가 다섯 명으로 늘어나면 이 사회의 최고와 최저 간 임금격차는 네 배에서 여덟 배로 크게 악화된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한 명이 혁신을 통해 500원의 임금을 받게 됐다면 그 경제는 임금격차가 확대된 나빠진 경제라고 말할 것인가. 만일 혁신이 사라진 동일한 조건에서의 격차 확대라면 이는 사회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강성 노조가 주로 이 일을 한다. 차베스와 그 국민의 낮은 경제지력이 오늘의 베네수엘라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정규재 논설고문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