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의 막이 올랐다. 24일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시작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와 앞으로 지명될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청문회가 줄줄이 진행된다.

새 정부의 첫 번째 조각(組閣)인 만큼 ‘문재인호(號)’가 연착륙하기 위해선 이번 청문회가 중요한 변수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 실시한 인사가 신선·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후보자들이 청문회 검증 과정을 무난하게 통과할지가 관심거리다.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적임자인지를 다각도로 꼼꼼하게 짚어내자는 게 청문회 취지다. 국회에서는 이런 취지를 살리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번 청문회 역시 후보자의 직무 능력 파악보다는 여야 간 정략적인 기싸움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000년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거의 어김없이 신상털기·망신주기식의 본말이 전도된 정쟁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후보자가 간신히 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만신창이 상태에서 직무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한 전직 총리는 “청문회를 지켜본 가족들이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총리를 해야 하느냐며 눈물을 쏟아낼 때 참담했었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청문회가 정치투쟁의 장이 됐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놓고 후보자 낙마 목표 수를 정해놓고 저격수를 배치하는 야당의 행태가 관행으로 굳어져 왔다. 그러다 보니 유능한 인물들이 청문회 패닉에 빠져 공직을 기피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돼 왔다. 개인적 흠결을 넘어설 만큼 능력을 갖춘 인물이 청문회 때문에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놓친다면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국회가 벤치마킹한 미국의 청문회 제도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은 후보자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비롯해 신상에 관한 것은 사전에 엄밀한 조사와 심층 면접을 통해 사실상의 1차 청문회를 조용하게 치른다. 이후 공직자로서의 능력에 관한 것은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이원화방식이다. 공직자 후보가 신상 문제로 상처받지 않고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지난 19대 국회 때 여야는 청문회 제도 개선을 위해 40여 개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 하고 자동폐기됐다. 여야가 새로운 청문회 문화를 위한 제도 개선에 힘을 모아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