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맨체스터
영국 브리튼 섬은 BC 55년 카이사르의 침공 이후 약 450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켈트족을 막기 위한 하드리아누스 성벽, 안토니우스 성벽 등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도시명에 ‘체스터(chester)’가 많은 것도 로마의 영향이다. 개인 성곽, 작은 요새를 뜻하는 라틴어 ‘castellum’에서 유래했다. 성(城)을 뜻하는 영어 ‘캐슬(castle)’, 프랑스어 ‘샤토(chateau)’, 스페인어 ‘카스티요(castillo)’나 인도의 ‘카스트(caste)’도 어원이 같다. (쓰지하라 야스오, 《지명으로 알아보는 교실 밖 세계사》)

이름부터 로마 흔적이 뚜렷한 도시가 맨체스터(Manchester)다. AD 79년 건설된 로마 군사요새 겸 정착지인 ‘만쿠니움(Mancunium)’에서 비롯됐다. 중세부터 직물수공업이 발달한 맨체스터는 18세기 방적기, 직조기가 발명되자 산업혁명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래서 별칭이 ‘코트노폴리스(Cottonopolis)’, 즉 ‘면(綿)의 도시’다.

세계 최초의 산업도시답게 그늘도 컸다. 인구 폭증, 빈민, 열악한 노동환경 등 사회문제의 압축판이었다. 토크빌이 “가장 발전했으면서 가장 야만적 상태”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특히 엥겔스가 맨체스터의 공장을 경영하며 쓴 신문기사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1845)는 3년 뒤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당선언’을 발표하는 기폭제가 됐다. 만약 엥겔스가 다른 도시에서 살았다면 그들의 자본주의 분석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철도(1830년)가 개통되면서 공업도시와 항구도시로 나란히 성장했다. 그러나 1893년 맨체스터 운하가 뚫리면서 리버풀 항구의 필요성이 감소했다. 20세기 들어 맨체스터는 발빠르게 상업·금융·교통 중심도시로 변신해 런던 버밍엄에 이은 3대 도시로 여전히 건재하다. 반면 리버풀은 배후 산업을 잃고 쇠락해 지금도 지역감정이 남다르다. 리버풀FC와 맨유가 격돌하는 축구경기(노스웨스트 더비)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리버풀은 비틀스, 맨체스터는 브릿팝의 거장 오아시스를 배출하기도 했다.

또한 맨체스터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19세기 곡물법 폐지에 앞장선 맨체스터학파로도 유명하다. 맨체스터대학은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이 대학 출신이다. 영국 대표 신문인 가디언, 고급자동차 롤스로이스도 맨체스터에서 시작했다.

22일(현지시간) 맨체스터의 공연장에서 폭탄테러로 2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전혀 방비없는 ‘소프트 타깃’을 노려 세계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게 21세기의 뉴노멀인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