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도시의 진화
1964년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처음 사용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낙후된 구(舊)도심 활성화로 중산층 이상의 ‘유입’에 주목한 개념이었다. 런던의 첼시와 햄프스태드는 젠트리(gentry·중상류 계층)가 몰려들면서 고급 주거지로 변모한 대표적인 재생 도시지역이다. 지금은 이런 곳에서 기존 거주자가 치솟는 임대비와 주거비용을 감당 못해 밀려나가는 ‘유출’ 현상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이 말이 주로 쓰이고 있다.

서울도 다양한 곳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로와 인사동, 홍대·신촌·합정, 경리단길, 북촌 등이 초기 지대라면 최근에는 서촌, 상수동, 성수동 등지로 확대 추세다. 서울시가 2015년 11월 상가 임차인 보호를 내세워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까지 내놓은 배경이다.

도시 발전을 둘러싼 다른 논쟁들처럼 젠트리피케이션에도 양면성이 있다. 개발이익에 대한 갈등 외에 유산의 소멸 같은 부작용도 있지만 도심 재생, 도시 진화 차원에서는 피하기 어려운 과정이기도 하다.

마천루의 수직도시, 교통과 편의시설이 결합한 현대 첨단도시들이 대개 이런 과정을 잘 극복해 재탄생했다. 런던 템스강변의 카나리부두 재개발, 민간자본이 주도해 도쿄 명소가 된 롯폰기힐스, 문화단지로 거듭난 스페인 빌바오의 도심개발사업은 손꼽히는 성공 사례다. 도심 재개발과 2차 세계대전 뒤 ‘교외화 현상’을 주도하던 중산층 백인들의 유턴이 맞물려 도시를 키운 뉴욕 보스턴 같은 곳도 있다.

산업화나 경제 발전의 역사도 도시의 성장과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인구가 집중되고 자본과 기술이 축적되면서 직업은 전문화·세분화되는 곳이 도시다. 현대 도시들은 저마다의 특징과 강점을 내세우며 인구와 기업 유치전쟁을 벌인다. 서울, 상하이, 도쿄의 경쟁처럼 국경도 없다. 《도시의 탄생》을 쓴 도시전문가 P D 스미스는 지금부터 200년 전까지 약 2000년 동안 도시 인구는 인류의 3%에 불과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쳐 지금은 절반이 도시에 살고, 2050년에는 75%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시화는 신도시 건설 아니면 기존 도시의 재개발 방식뿐이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의 하나로 5년간 50조원이 투입될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꿈틀거리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도시재생기획단이 설치되고 범정부 추진기구도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관(官)주도보다는 시장 원리에 따라야 성공확률이 높다. 개발자본도 가급적 정부예산보다 민간의 자율투자가 바람직하다. 정부는 도시재생을 막는 규제 점검에 주력하는 게 어떨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