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진이 표준시를 결정하는 세슘 원자시계를 살펴보고 있다. 표준연 제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진이 표준시를 결정하는 세슘 원자시계를 살펴보고 있다. 표준연 제공
1초의 시간이 상당한 의미를 갖는 영역들이 있다. 육상이나 수영 같은 기록경기에서는 100분의 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린다. 음속의 다섯 배인 마하 5의 속도로 날아가는 패트리엇 대공미사일은 불과 0.1초 차이로 목표물에서 170m를 비껴간다. 그렇다면 정확한 시간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걸까. 국내에선 2019년을 목표로 언제 어디서든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이색 방송이 준비되고 있다.
GPS 테러에도 '정확한 시간' 중계 방송 나온다
◆단파·GPS 신호로 시간 오차 잡아

국제도량형국은 1967년부터 전 세계 시간을 표준화하기 위해 진동수가 일정한 세슘133 동위원소의 진동수를 기준으로 1초를 정의하고 있다. 세슘 동위원소가 1초에 91억9263만1770회 진동하는 게 기준이다. 이전까지는 지구가 하루 동안 한 바퀴 돌 때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했다. 수많은 휴대폰 단말기와 신호를 주고받는 기지국, 분초를 다투는 금융 거래를 하는 은행권, 정밀 기계가 작동하는 공장에선 정확한 시간 정보가 요구된다. 그런데 시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차가 생긴다.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외부 표준시간을 참고해 오차를 줄이는 기술을 ‘시각 동기화’라고 한다. 내비게이션에 들어가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시각 동기화 기술이다. 지상에 있는 GPS 수신기는 위성 네 대가 쏜 전파의 도달 시간으로 거리를 산정해 현재 위치와 고도를 정한다. 위성들이 쏜 신호만으로 시간 오차를 잡아낼 수 있어 시계처럼 사용된다.

이와 별도로 방송 주파수로 시간 오차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은 1984년 대전 유성 표준연 내에 표준주파수국을 짓고 세슘 원자시계에서 나온 주파수를 방송 전파로 이용해 표준시(KST)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표준주파수국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시보탑에서 5메가헤르츠(㎒) 단파를 쏴 초, 분, 시 등의 정확한 시간 정보를 제공한다. 이 신호를 수신하면 평생 표준시를 틀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

◆GPS 교란에 시간 정확도 위협

단파는 직진성이 강해 산이나 건물 등 장애물에 막히면 전달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계 안테나를 곳곳에 세워야 하기 때문에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 GPS도 한계가 많다. GPS 신호는 건물 안이나 지하에선 잡히지 않는다. GPS 신호보다 센 전파를 쏴서 진짜 신호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게 하는 교란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이다. 북한의 GPS 공격에 사실상 노출돼 있는 것이다. 민간조사업체 더비앤아이에 따르면 GPS 공격을 받아 정확한 시간 정보를 받지 못할 경우 통신, 방송, 금융, 전력, 자동화 등 7개 분야에서 입을 손실이 20년간 31조원에 이른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시간 선진국’들은 그 대안으로 단파와 GPS 외에 ‘장파’를 쓰고 있다. 주파수 50~100㎑인 장파는 건물을 투과할 수 있어 실내까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또 장파는 중계안테나 없이 송신탑 하나로 반경 1000㎞에 이르는 한반도 전역에 시간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장파방송이 GPS를 보완해 통신, 방송, 금융, 전력에 사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선 시계회사 카시오와 전자회사 JVC가 전파시계를 내놓는 등 5000만대 이상 보급됐다. 독일도 차량과 주요 산업시설에 1억대 이상 수신기가 보급됐다.

표준과학연구원도 2019년 2월 국내 첫 시험 방송을 앞두고 있다. 경기 여주 KBS AM송신소에 시험방송국을 짓고 반경 200㎞ 지역에 송출한다는 계획이다. 주파수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 65㎑ 대역을 사용할 계획이다. 장파방송은 초당 200비트 정보를 보낼 수 있다. 이는 50개 영문자를 보낼 수 있는 정보량이다. 유대혁 표준연 시간센터장은 “장파 방송은 표준시와 부가 정보 방송을 비롯한 시각 정보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교통 신호의 정확도를 높이고 재난 정보를 빠르게 한반도 곳곳에 송출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