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란다] 용미(用美)·득중(得中)이 안보정책의 키워드
문재인 대통령 개인에게 ‘장미 대선’의 승리는 재수(再修)를 통해 힘들게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거머쥔 일생 최대의 순간이겠지만 자축을 하며 즐길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한국이 겪고 있는 안보 위기, 외교 고립, 경제 침체, 정치 폐해, 사회 분열 등 5대 위기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지도력 공백 후유증을 감안한다면 문 대통령은 곧바로 팔을 걷어붙이고 정책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할 처지에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분야가 안보이며, 그래서 새 정부의 안보정책에 거는 전문가들의 기대는 특별하다.

안보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 안보상황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 평가와 예측을 바탕으로 정책기조를 설정해야 하며, 설정된 기조에 입각해 분야별 또는 현안별 정책대안을 수립해나가야 한다. 당연히 정책기조와 구체적 정책대안들은 현 상황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예측이 낙관적인가 또는 비관적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현재 및 미래의 안보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안보는 날로 엄중해지는 북핵 위협, 중국의 정치·군사적 부상과 팽창주의 대외정책으로 인한 압박감, ‘트럼프 리스크’로 인한 동맹의 불확실성, 한·일 안보협력이 매끄럽지 못한 가운데 노골화되고 있는 일본의 재무장, 초강대국 복귀를 꿈꾸는 러시아의 군사적 행보, 안보사안에서마저 극심한 찬반 논쟁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분열상, 국력 및 외교위상의 하락을 초래할 한국 경제의 추락 등 일곱 가지 악재에 포위당한 칠면초가(七面楚歌)의 상태에 있다. 즉, 한국 안보는 왜소화·고립화·주변부화의 길로 들어선 상태이며 새 정부에는 이 추세를 반전시켜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부과돼 있다.

새 정부가 이런 평가에 공감한다면 거기에 부합하는 정책기조가 필요할 것이다. 첫째, 안보·국방 역량과 관련해서는 지금은 축소지향형이 아니라 확대지향형 정책기조가 필요한 시기다. 둘째, 안보정책과 대북정책 간의 관계는 양자를 반비례적 또는 제로섬적인 관계로 보기보다는 확고한 안보를 상수(常數)로 놓고 그 위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남북화해 추구와 관련해서는 북핵 국제공조를 이탈하지 않는 방법과 범위를 준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미국과 중국을 상대할 때 등거리 외교나 일방적 편승은 위험하다고 할 것이다. 이보다는 굳건한 동맹을 중심에 둔 상태에서 한·중 간 비적대적 우호관계의 유지발전에 최선을 다하는 ‘얼라이언스 앤드 헤징(alliance & hedging)’이 현실적인 기조일 것이다.

새 정부 앞에는 당장 대처해야 할 정책과제가 산적해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가능성,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 미 전술핵 재배치, 미 핵우산의 신뢰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기하는 안보무임승차론, 위안부 합의와 한·일 안보협력, 한국의 적정 국방예산 규모, 한국군 북핵억제 체계의 적절성 및 충분성, 국방개혁 등 현안이 새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새 정부는 안보상황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예측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정책기조를 설정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으로 보인다.

안보에 관한 한 보수와 진보도 없고 ‘신의 한 수’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모든 것은 확고한 안보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정론(正論)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지금은 한국이 한편으로는 독자능력을 함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동맹과 우방국을 활용해 대중 및 대러 입지도 확보해나가는 용미(用美)·용일(用日)·득중(得中)·득러(得露)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태우 < 건양대 교수·전 통일연구원장·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