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7] '통합'은 간데없고…증오·막말 판치는 대선판
대통령 선거전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막말과 편가르기가 도를 넘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탄핵정국과 대선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국론 분열 해소를 위해 통합을 외쳐도 모자랄 판에 증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대선 막판 지지층 결집을 위해 정치권의 고질적인 진보와 보수 진영논리가 도진 것이다. 이 같은 편가르기는 눈앞의 표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선거가 끝난 뒤 국민 통합과 협치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30일 충남 공주 유세에서 “선거철이 되니까 또 색깔론, 종북몰이가 시끄럽다. 오히려 안보를 믿을 수 있는 후보는 문재인뿐이다. 이제 국민도 속지 않는다. 이×들아”라고 말했다. ‘안보관이 불안하다’는 보수진영의 공격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이×들아’라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문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이해찬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갔다. 한때 친노 좌장이던 이 의원은 같은 유세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중 구속된 사람이 박근혜·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세 명인데, 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람들”이라며 “극우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저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농단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궤멸시켜야 한다”며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는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같은 사람이 이어서 여러 번 집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과 포용은 커녕 이념 대립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 누구를 찍을까 > 19대 대통령선거를 8일 앞둔 1일 한 대선후보의 유세 현장에 모인 유권자들이 스마트폰으로 후보를 촬영하고 있다. 한경DB
< 누구를 찍을까 > 19대 대통령선거를 8일 앞둔 1일 한 대선후보의 유세 현장에 모인 유권자들이 스마트폰으로 후보를 촬영하고 있다. 한경DB
범(汎)보수 진영은 일제히 반발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보수를 궤멸시키겠다는 말은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연상시킨다”며 “문재인 후보가 집권하면 (이해찬 의원이) 좌파공화국의 상왕이 돼 문재인 말대로 보수세력을 불태우겠다는 것으로 공포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정준길 한국당 대변인은 “집권하면 완장 차고 반대세력을 제거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보인다. 그것도 완전 궤멸시켜버린다고 하니 총칼만 안 들었지 대대적인 숙청이라도 할 것 같다”고 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측의 조영희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미 선거에 승리한 양 집권을 전제로 한 발언들을 쏟아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대변인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선공약집에서 ‘적폐청산’을 10대 공약의 1순위로 올린 것을 거론하며 “민주당은 집권 후 적폐청산의 기치 아래 정치 보복과 사정 광풍을 명시적으로 예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손금주 수석대변인도 “이 의원은 ‘완전 궤멸’ 운운하며 국민을 아예 숙청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집권하면 복수의 정치를 하겠다는 공개 선언에 다름 아니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지난달 30일 경남 김해 유세에서 자신을 반대했던 좌파 시민단체를 겨냥해 “집 앞에서 물러나라고 데모를 하지 않나 (경상남도) 빚 다 없애주고 청렴도 꼴등을 1등으로 만들고 나왔는데 퇴임하는 날 소금을 뿌리지 않나. 에라 이 도둑놈의 ××들이 말이야”라고 욕설을 했다.

이 같은 막말은 몇 차례 TV토론에서 벌어진 ‘저질 공방’에서 이미 예고됐다. 문 후보는 홍 후보의 잇단 과거 공세에 “이보세요”라고 홍 후보를 몰아세웠고 홍 후보는 “버릇없다”고 맞받았다. 유 후보는 홍 후보를 향해 “성폭행 방조범”이라고 비난했고 홍 후보는 “제2의 이정희”라고 역공을 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홍 후보를 향해 “고장난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비꼬았고 안 후보는 문 후보에게 “제가 갑철수입니까” “제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입니까”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전문가들은 “대선 막판에 지지자 결집이 필요한 상황에서 아직 선택을 하지 못한 상당수 유권자를 결집하기 위한 네거티브 공략”이라며 “지지자 결집을 위한 전략적 차원이지만 과거 대선에서도 별 효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대선후보들은 관용과 포용 대신 갈등과 불안을 키워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막말은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를 넘은 대선후보들의 막말 정치는 현 대선 판세와 무관치 않다. 문 후보 진영은 대선 승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 의원은 “여론조사를 보니 선거는 끝났다”며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승리를 자신했다. 문 후보가 40% 안팎의 콘크리트 지지율로 독주하는 상황에서 안 후보와 홍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이 없어진 만큼 승리를 의심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 측은 대선 승리를 전제로 중도 확장보다는 지지층 결집을 통해 득표율을 올리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문 후보 측의 이 같은 기류는 공약 우선순위와 화두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안 후보와 1위 자리를 놓고 접전을 벌일 때 등장했던 ‘대통합’ 화두는 언젠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당시 주요 화두에서 빠졌던 적폐청산이 다시 공약집 전면에 등장했다. 공약집 12대 약속의 첫째가 ‘이명박 박근혜 9년 집권 적폐청산’이며 구체적 공약 제1호가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 설치’다. “문 후보가 일자리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론 미래보다는 과거에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홍 후보가 ‘좌파 공화국’ 등 원색적인 용어를 동원해 문 후보를 공격하는 것은 보수표 결집을 위한 전략이다. TV토론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대구·경북(TK) 등에서 보수 바람을 일으킨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 여세를 몰아 안 후보를 제치고 문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하는 게 홍 후보 구상이다.

누가 당선되든 차기 대통령 앞엔 험로가 예고돼 있다. 북핵 위협과 중국과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 ‘트럼프 리스크’ 등 대외환경은 최악이다. 국론 분열과 내수 문제 등 대내 여건도 만만치 않다. 당장 협치 없인 정부 구성조차 쉽지 않은 터에 갈등과 편가르기로는 이런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창 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