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석유화학 공장에서 생산하는 에틸렌(화학제품의 기초원료) 원가는 t당 650달러가량인데 가스화학 공장에서 만드는 에틸렌은 360~380달러밖에 안됩니다. 가스화학이 훨씬 싸죠.”

지난 19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만난 황진구 롯데케미칼 미국법인 부사장은 가스화학의 원가 경쟁력에 후한 점수를 줬다. 롯데케미칼은 이 지역에 대규모 가스화학 공장을 짓고 있다. 셰일가스에 들어 있는 에탄을 원료로 에틸렌 등을 만드는 공장이다. 내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미국 화학회사 액시올과 함께 총 3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황 부사장은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한국에 공장을 지을 때보다 투자비가 1.5~2배가량 더 든다”며 “그런데도 우리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미국에 가스화학 공장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 투자 잇따라

[셰일혁명 '제2의 물결'] '반값' 가스화학 기습…한국 석유화학, 호시절 안주할 땐가
현재 미국에 건설 중인 대형 가스화학 공장만 10여곳에 달한다. 다우케미칼, 쉐브론필립스, 엑슨모빌 등 미국 기업은 물론 롯데케미칼, 대만 포모사 등 외국계 기업까지 공장 건설에 가세했다.

이들 공장은 대부분 1차 셰일가스 붐(2011~2014년) 때 투자 계획이 확정돼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에 공장 건설이 끝난다. 이렇게 되면 내년 말쯤엔 미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이 지금보다 50%가량 늘어난다. 박재철 롯데케미칼 미국법인 상무는 “미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1980년대 초 연 2000만t에 도달한 뒤 30년 넘게 정체됐다”며 “그런데 올해와 내년에만 생산능력이 연 1000만t가량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 유가 급락으로 한동안 시들했던 가스화학 공장 건설 바람이 올해부터 다시 일고 있다. 쉘, 토탈 등이 2022년 전후로 가스화학 공장을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가스화학 공장 몸값도 올라

가스화학 붐은 한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 화학회사는 대부분 석유화학회사이기 때문이다. 석유화학회사는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나프타를 원료로 화학 제품을 생산한다. 지금은 저유가 덕분에 나프타 가격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석유화학회사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원가 경쟁력이 높은 가스화학 공장이 대거 시장에 진입하면 지금 같은 호시절은 사라질 수 있다. 황 부사장은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한국 화학회사들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가 미국에 가스화학 공장을 짓는 배경이다.

롯데 외에 다른 국내 화학회사도 과거 미국에 가스화학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부지 확보에 실패하거나 사업 파트너를 찾지 못해 사업 계획을 접었다. 대림산업은 직접 공장을 짓는 대신 가동 중인 미국 가스화학 공장 인수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달 중순 치러진 인수전에서 더 높은 가격을 써낸 캐나다 노바케미컬에 밀려 고배를 들었다. 연간 90만t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가진 이 가스화학 공장은 인수가격 21억달러(약 2조4000억원)에 낙찰됐다. 당초 2조원 정도로 예상됐지만 글로벌 기업이 대거 뛰어들면서 몸값이 뛴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크찰스=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