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만능주의 빠진 경제학, 몸을 낮춰라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는 《슈퍼 괴짜경제학》에서 ‘행복한 매춘부’ 앨리를 소개한다. 앨리는 똑똑하고 능력 있고 사무기기를 잘 다루는 데다 육체적 매력까지 넘치는 직장인이었다. 회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생활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앨리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육체적 매력을 파는 1인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 덕에 그는 1주일에 10~15시간 정도 일하고도 이전에 받던 봉급의 다섯 배를 벌었다. 앨리는 새 직종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실험했다. 화대를 시간당 300달러에서 50달러씩 올려 보면서 500달러를 적정가격으로 정했다.

레빗과 더브너는 “앨리의 선택은 결혼이 곤란하고 동종 업계 사람 말고는 친구를 사귀기 힘든 희생도 따르지만 이런 단점들은 500달러라는 시간당 임금에 견줘 보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어 “어째서 세상 여자들은 앨리처럼 살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필립 로스코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차가운 계산기》에서 “경제학자 말고 누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느냐”며 “경제학자들은 의사결정의 모든 요소를 같은 척도로 측량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고 지적한다. 남편이나 친구가 없다는 희생은 단점이지만 높은 임금에서 오는 장점들로 상쇄할 수 있으니 결국 여러 눈금이 함께 담긴 큰 계산자에서 덧셈·뺄셈이 가능하다는 가정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장을 그만두고, 도덕적 규범에 어긋나는 돈벌이를 택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앨리는 어떻게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저자의 해석은 이렇다. 앨리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경제 영역에서 벗어나 환경, 교육, 질병은 물론 죽음, 연애, 결혼 등 삶의 내밀한 곳까지 침투해 인간의 행동과 사고, 감정을 지배하고 도덕적 판단을 대신하는 경제학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레빗과 더브너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춘에도 경제원리가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만 도덕적 판단을 배제했을 뿐이다. 여기에는 효율성을 미덕으로 삼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행위자인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를 인간 본성의 한 측면으로 보는 전제가 깔려 있다.

로스코의 시각은 다르다. 경제적 인간은 계몽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가상의 모델로, 산업화와 자본주의를 거치며 오늘날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인간형으로 올라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경제학이란 효율성의 과학이 학문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에 영향력을 떨치며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지배하게 된 결과다.

저자가 보기에 세상과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비용·편익 분석’을 들이대고 효율성을 판단의 잣대로 삼는 지금의 경제학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공공의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풀자면 경제학의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새로운 경제학 모델로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앨빈 로스를 언급한다. 짝짓기 이론으로 유명한 로스는 장기이식을 원하는 이들과 기증자를 연결해 주는 방법을 경제학 모델로 혁신했다. 저자는 “경제학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판단하려는 것에서 벗어나 로스처럼 주어진 단 하나의 문제와 씨름하는 공학적 수준으로 몸을 낮춰야 한다”며 “좋은 경제학은 지역적이며, 구체적이며, 민주적인 경제학”이라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