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노버 국제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산업박람회 ‘하노버메세’에서 SAP 직원들이 사물인터넷을 이용해 산업용 로봇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유하늘 기자
독일 하노버 국제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산업박람회 ‘하노버메세’에서 SAP 직원들이 사물인터넷을 이용해 산업용 로봇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유하늘 기자
축구장 77개 크기(55만4000㎡)의 행사장에 참가 기업 수만 6500여개. 독일 하노버 국제전시장에서는 세계 최대 산업박람회 ‘하노버메세’가 열리고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개막돼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총 25만명의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주최 측은 예상하고 있다.

IoT 시대…집에서 주문하면 공장서 바로 '맞춤 생산'
산업계에서 하노버메세는 ‘4차 산업혁명의 발원지’로 불린다. 독일이 2011년 제조업과 정보기술(IT)의 통합을 골자로 한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처음 소개한 곳이어서다. 올해 70회째를 맞은 이 행사에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업체만 500개 넘게 참가했다.

행사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글로벌 제조업체와 IT업체의 활발한 ‘합종연횡’이었다. 박람회장 동쪽에 있는 스마트공장 전시장에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대규모 부스를 차렸다. 이들은 제조업체와 함께 산업용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을 선보였다. IoT·클라우드 등 IT 서비스가 미래 공장의 주축이 되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글로벌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업체인 SAP는 세계적 로봇 제조기업인 쿠카 등과 손잡고 산업용 IoT 서비스를 시연했다. 자사 클라우드로 생산 현장의 산업용 로봇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정비 시나리오를 예측할 수 있는 기능을 적용했다.
세계적인 산업·의료용 로봇 제조업체 쿠카의 ‘바텐더 로봇’이 맥주잔에 맥주를 따르고 있다. 유하늘 기자
세계적인 산업·의료용 로봇 제조업체 쿠카의 ‘바텐더 로봇’이 맥주잔에 맥주를 따르고 있다. 유하늘 기자
이 서비스의 핵심은 ‘디지털 트윈스’다. 장비 정보나 동작 상태를 클라우드로 공유해 모바일 기기로 언제 어디서든 장비를 실시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SAP 직원이 들고 있는 태블릿PC를 보니 산업용 로봇과 실시간 연동돼 동작 상태와 내구도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닐스 헤르츠버그 SAP 사물인터넷전략부문 수석부사장은 “미래 제조업의 경쟁력은 IoT, 클라우드를 이용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 과정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라며 “세계 최대 오토바이 제조업체 할리데이비슨은 21일 걸리던 특정 작업 시간을 SAP 시스템을 도입한 뒤 6시간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독일 최대 전기전자업체 지멘스는 소비자가 요거트나 밀크셰이크 등 유제품을 자기 취향에 맞게 설계하고 받아볼 수 있는 유제품 생산관리 시스템을 소개했다.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 취향에 맞는 제품을 주문하면 바로 맞춤형 제작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생산라인이 IoT로 온라인에 연결돼 있어 가능한 일이다. 지멘스 직원 마르쿠스 라데 씨는 “기존에는 한 라인에서 한 가지 제품만 만들어야 했지만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수십 가지 제품을 한 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세계 4위 로봇 제조업체 쿠카의 ‘바텐더 로봇’도 큰 인기를 끌었다. 바텐더 로봇은 두 개의 로봇팔로 구성돼 있다. 한 로봇이 잔을 집어 비스듬히 들어올리면 다른 로봇이 옆에 있는 맥주병을 집어 잔에 천천히 따른다. 로봇은 맥주잔을 80%가량 채운 다음 반듯이 세워 마저 채우는 세심한 모습을 보여줬다. 잔을 꽉 채우면서도 맥주나 거품은 단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스마트공장 전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웠다. 국내 기업 가운데는 LS산전이 에너지 분야에 참가해 스마트그리드와 스마트공장 관련 서비스를 선보였다.

한국 기업이 스마트공장 부문에 아직 소극적인 것은 국내 대형 SW업체의 인식과 협업 의지가 부족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LS산전 부스에서 만난 이 회사의 김영민 해외사업담당은 “해외에서는 제조업체와 IT업체의 스마트공장 협업 모델이 주류로 자리잡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대형 SW업체들이 제조업체와 손잡는 걸 꺼리고 직접 제조업에까지 뛰어드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양상은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것으로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노버=유하늘 기자 sk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