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달리의 초현실세계를 서커스에 담았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은 아름답고 웅장한 연출로 주목받았다. 바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푸른 무대 위를 아이들이 탄 배가 가로지르고 샤갈, 말레비치, 칸딘스키 등 러시아 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형상화되면서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다. 스위스 출신 작가 겸 연출가인 다니엘 핀지 파스카(53·사진)의 작품이었다.

그가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대본을 쓰고 연출한 아트 서커스 ‘라 베리타’를 오는 27~30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 올린다. 2013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초연한 뒤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20개국에서 400회 넘게 공연한 작품이다. 한국 초연을 이틀 앞둔 25일 기자들과 만난 그는 “달리의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초현실적인 서커스로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고 했다.

파스카는 “‘라 베리타’ 제작은 달리의 그림 ‘광란의 트리스탄’과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광란의 트리스탄’은 1944년 미국에 머물던 달리가 뉴욕의 한 발레 공연의 배경막으로 쓰려고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공연 이후 분실돼 65년간 빛을 보지 못했다. 그림은 2009년 극장의 창고 구석에서 발견됐다. 미술품 경매에서 이 그림을 사들인 수집가는 그림이 본래 목적대로 공연 배경으로 쓰이기를 바랐다. 그는 세계 양대 서커스 단체인 ‘태양의 서커스’ ‘서크 엘루아즈’ 등과 호흡을 맞춘 공연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파스카에게 이 그림을 작품에 사용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림을 보고 난 뒤 달리가 생전에 살던 스페인 카다케스 집을 찾았어요. 그가 남긴 흔적, 그가 보던 책들을 샅샅이 훑었습니다. 달리의 삶에서 주운 자갈들로 모자이크하듯이 이번 공연을 만들었어요.”

‘라 베리타’는 공중제비와 그네, 밧줄타기, 저글링, 훌라후프 등 서커스의 다양한 곡예 동작을 춤, 음악, 미술과 결합해 보여준다. 수채화 같은 조명 아래 반라의 무용수가 밧줄을 타고 날아오르고, 코뿔소 탈을 쓴 출연자들이 붉은 실타래를 하늘 높이 던지며 주고받는 퍼포먼스 등을 펼친다. 그는 “초현실주의 작품은 사랑과 공포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환상적으로 나타내는 힘이 있다”며 “달리의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환상을 곡예 속에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서커스는 ‘가장 섬세하고도 미묘한 예술’이다. 삶의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해 곡예로 표현한다는 점에서다. 파스카는 “삶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우리가 어떻게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작품 명인 ‘라 베리타’는 ‘진실’이라는 뜻이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