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그래도 기업이 답이다
“이민 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 대학 동기 중 반 이상이 퇴직을 했다.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결혼시키다보니 남은 재산이라곤 작은 평수의 아파트 한 채에 현금 몇 푼밖에 없다. 아직 10년 정도는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국내에서는 재취업이 불가능하니 해외에 나가 궂은일이라도 하고 싶단다.

젊은 층도 다르지 않다. 지금 젊은 층은 우리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로, 에코붐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지만 취업문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구직난에 처한 안타까운 상황이 우리 경제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헬조선’이라고 비하하면서 너도 나도 ‘탈(脫)한국’을 꿈꾼다. 코리안 엑소더스요, 디아스포라다.

사람들이 이럴진대 기업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가 급증했다. 작년 기준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 투자는 350억달러에 달한다. 원화로 환산하면 40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이 중 82%가 대기업, 16%가 중소기업이다. 그런데 투자금액의 추이를 살펴보면 대기업의 경우 1990년대는 연평균 17%, 2000년대는 27%로 해외 투자가 가속화하다가 201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6.4%로 주춤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비정상적으로 해외 투자가 급증했던 2000년을 제외하면 1990년대 14%, 2000년대는 11%로 주춤했다가 2010년대 들어 16%로 반등했다. 2015년에는 전년 대비 61% 급등했고 작년에도 18%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해외 진출을 하면 중소기업이 시차를 두고 진출한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위의 통계를 보면 이런 가설이 성립하지 않는다. 실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 증가율 간 상관계수를 계산해 봐도 그런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2000년대 들어 글로벌화를 외치면서 해외 투자에 박차를 가한 반면 중소기업들은 2000년대 휴면기를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리는 것 같다. 이런 중소기업의 ‘탈한국’ 현상은 대기업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고용의 88%를 중소기업이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엑소더스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임금과 더불어 노동시장의 경직성, 반(反)기업 정서 등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그런데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지인들에게 물어 봤더니 그런 요인 못지않게 과도한 규제와 대기업의 하도급계약이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상속세율을 이유로 꼽았다. 특히 규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공장 하나 짓는 데 인허가를 받으려면 2~3년은 족히 걸리고 그나마도 못 받는 경우가 태반이란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더니 요즘 시골에 내려와 일하겠다는 젊은이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수도권에 공장을 세워야 하는데 여러 규제로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 너무 어렵단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이 야심 찬 공약을 내걸고 있다. 국가의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 구호가 분분하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해법은 단순하다. 서민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복지 수준을 높이면 된다. 그런데 일자리는 기업들이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이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되 공정성을 높이고 세금을 많이 내게 하면 된다.

규제가 만들어지면 만들어질수록 역설적으로 정경유착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경유착의 근절은 ‘경(經)’이 ‘정(政)’에 다가갈 유인을 없애면 된다. 대신 경제 시스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 공정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 더불어 이들로부터 받은 세금으로 사회안전망을 제고해 경쟁에서 낙오됐을 때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말은 쉽지만 우리는 이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왔다. 그래서는 사람과 기업의 코리안 엑소더스를 막을 수 없다.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kcm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