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화 전 KIST 원장 "산업화 이끈 한국 과학기술의 힘, 베트남에 심겠다"
“베트남은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 모델을 가져가 산업화에 시동을 걸고 국가 연구개발(R&D) 체계를 전면 개편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똑같은 연구소를 갖고 싶어 합니다.”

금동화 전 KIST 원장(66·사진)이 11일 베트남 최초 산업기술 종합연구소인 VKIST의 초대 원장에 선임됐다. VKIST는 한국 정부가 2019년까지 391억원을 무상 지원해 베트남 하노이 서쪽 30㎞의 호아락 하이테크파크에 짓는 종합연구소다. 2012년 3월 방한한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가 한국의 과학기술 역량을 전수받고 싶다고 요청하면서 사업이 처음 시작됐다. 1966년 설립돼 한국의 산업화를 앞당긴 KIST를 모델로 하고 있어 ‘베트남판 KIST’라고 불린다. 연구소 이름도 베트남 정부가 콕 찍어 정했다.

금 원장은 “VKIST 설립에 대한 베트남 정부와 사회가 거는 기대는 한국에 처음 KIST가 설립됐던 때 못지않다”며 “KIST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원장을 지낸 고 최형섭 박사의 심정을 지금은 알겠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금 원장에게 수도 하노이에 있는 과학기술부 청사의 장관실 옆 사무실을 내줬다. 차관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예우한 것이다.

금 원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부터 KIST에서 근무를 시작해 2006년 원장에 올랐다. 32년간 KIST맨으로 살아온 그는 VKIST 운영의 적임자로 꼽힌다.

그에게 주어진 5년간의 임기 동안 넘어야 할 암초는 많다. VKIST는 베트남에 처음 설립되는 연구소는 아니다. 베트남에는 공산체제가 들어오면서 설립한 지 40년이 넘은 연구소만 30개가 넘는다. 하지만 주로 논문을 위한 연구만 하는 데다 연구 성과도 주변국에 크게 뒤진다. R&D 투자 역시 한국의 30분의 1 수준에 머문다. 무엇보다 인재 유치가 큰 난항이다.

“베트남 정부는 KIST가 설립 초기 미국 유학 중이던 젊은 과학자들을 데려온 것처럼 해외에서든 자국 내에서든 촉망받는 인재들을 뽑아 배치하고 싶어 합니다. 당시 유치 과학자들이 한국의 화학공업과 전자산업을 일으킨 점에 크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VKIST 건설비를 제외한 연구개발비와 운영비가 확보되지 못한 점도 금 원장에겐 큰 숙제다. “한국은 KIST를 세우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공산국가에서 그런 특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연구비를 확보하려면 다른 연구소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베트남 정부는 우선 VKIST를 통해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을 중점적으로 키울 계획이다. 베트남이 농수산업이 크게 발전한 점을 감안해 작물과 채소, 수산물을 안전하게 운송할 첨단 물류 기술 개발에도 나서기로 했다.

금 원장은 요즘 50년이 넘은 옛 보고서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KIST 설립 당시 악조건과 역경을 하나둘 넘어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베트남 정부의 원장 제의를 수락한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KIST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다면 원장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한국을 모델 삼아 나라의 R&D 체계까지 확 바꾸려는 베트남의 도전에 함께할 수 있어 기쁩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