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 중소제조업 기반 무너뜨린다
정치권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고 알려지면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에는 휴일근로가 1주간 연장근로시간 규제에 포함되는지 여부와 관련한 사안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돼 있다.

한국은 대표적인 장시간 근로 국가로 알려져 있다. 2015년 말 기준 한국 근로자 1인당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다. OECD 평균(1766시간)보다 20% 더 일한다. 근로시간 단축이 시급한 과제로 추진되기 시작한 배경이다.

2015년 9월15일 노·사·정 합의에 의해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며 일정 기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그 후 1주의 의미를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는 7일로 하되 △휴일근로 당일 외에 연장근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고 △1000인 이상부터 100인 미만에 걸쳐 기업 규모별 4단계로 시행하며 △노사 합의로 일정 기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안이 2016년 5월30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근로기준법 개정안으로 발의됐다.
[뉴스의 맥]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 중소제조업 기반 무너뜨린다
한국의 근로시간이 경제 수준에 비해 긴 것은 사실이다. 산업현장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단축의 방향성은 타당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근로여건은 다른 나라의 근로여건과 적지 않은 차이가 있어 근로시간 단축 정책 입안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우선 OECD 근로시간 통계에서 주당 근로시간별 취업자 비중을 보면, 한국은 풀타임 비중이 높고 파트타임 비중은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파트타임 비중은 독일과 일본이 각각 20% 이상, OECD 평균은 15.7%인 데 비해 한국은 8.7%다. 풀타임 비중이 높고 파트타임 비중이 낮다는 것은 근로시간 통계에서 그만큼 장시간 근로로 나타날 평균의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자영업자 근로시간을 줄여야

또 근로시간 통계는 영세 자영업을 포함하는데, 2010~2013년 OECD 국가 중 자영업자 비중을 보면 멕시코가 27.48%로 2위, 한국은 22.93%로 5위, OECD 평균은 15.4%, 일본은 8.88%로 26위 등으로 비교된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국가가 근로시간도 길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나라의 경우 자영업자의 근로시간을 줄이지 못한다면 여전히 장시간 근로 국가로 남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근로시간 단축 취지는 근로자 휴식 보장과 일자리 창출이 손꼽힌다. 근로자 휴식은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의 고용창출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근로시간 단축의 고용창출 효과에 관한 학계의 연구는 긍정과 부정이란 엇갈리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OECD는 일관되게 부정적이라는 결과를 보여 왔다. 특히 2000년 프랑스의 주 35시간법에 대해 프랑스 고용연대부는 고용창출과 실업률 저하에 기여했다는 결과를 내놓은 반면 OECD 고용사회국은 고용창출 효과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근로시간 단축의 고용창출 효과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남성 중심의 풀타임 고용률이 높다. 그만큼 가용할 수 있는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용률을 높이려면 주로 여성 파트타임 근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업종별 소정·초과근로 차이 커

한국의 기업 규모별 근로시간을 보면 기업 규모가 클수록 소정근로시간(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해 정한 근로시간)이 적고 초과근로시간이 많다. 영세 사업장에서는 소정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보다 길고 초과근로시간은 짧게 나타난다. 또 산업별 근로시간을 보면 숙박·음식업, 부동산임대업 등의 소정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보다 길고 초과근로가 짧다. 제조업, 광업 등의 소정근로시간은 중간 수준이나 초과근로가 많고 금융보험, 교육서비스업 등은 소정근로시간도 적고 초과근로도 적게 나타난다. 이는 숙박·음식업이나 부동산임대업 등의 경우 법정근로시간을 훨씬 넘고 있고 중소제조업 역시 적지 않은 장시간 근로를 보이며 금융보험업, 교육서비스업 등은 장시간 근로와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로시간 단축 시 금융보험업, 교육서비스업 등은 즉시 시행해도 문제가 없으나 숙박음식, 부동산임대업 등과 중소제조업의 경우 연착륙을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중소기업은 가뜩이나 근로자에 대한 낮은 처우로 인력이 부족한데 근로시간 단축으로 추가되는 일자리는 수입이 낮고 기존의 일자리도 임금이 삭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섣부른 근로시간 단축이 중소기업 인력난을 더 부채질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한편 한국은 휴일근로를 1주간의 근로시간에 포함해 연장근로로 인정해야 하는지의 문제도 있다. 이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문제다. 이 현안에 대한 하급심 판결은 엇갈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휴일근로를 1주간 연장근로와는 별개의 근로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가산임금은 50%에서 출발하고 중복사유 시 중복할증이 인정된다. 일본과 프랑스 등의 가산임금은 25%에서 출발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휴일근로에 연장근로 가산이 중복될 경우 중소기업이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산되는 이유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수당 중복할증을 인정하면 기업이 부담할 연간 추가 인건비가 8조6000억원에 달해 경영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근로시간 줄여도 정규직 안늘어

근로시간 단축은 추진해 나가야 한다. 다만 획일적이고 전시적인 추진이 아니라 근로 관행과 특징을 감안한 다각적이고 실효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파트타임 근로, 특히 여성의 파트타임 근로 촉진책이 수반돼야 하고 영세 자영업자의 획기적인 근로시간 단축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중복·할증임금 조정 방안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업 규모별, 산업별 실근로시간 실태 분석에 따라 당장 시행해야 할 부문과 연착륙이 필요한 부문을 나눠 충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의 표를 좇는 무분별하고 성급한 근로시간 단축 결정은 경계해야 한다. 프랑스의 주 35시간제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유럽 최고인 10%대의 실업률과 24%대의 청년실업률 그리고 매년 새로 체결되는 200만건의 고용계약 중 정규직은 16%밖에 안 되는 실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상희 <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