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국서 번지는 '한국 건너뛰기'
“뉴욕~워싱턴 간 초고속 열차 프로젝트에 중국이 참여하면 어떨까요.”

지난 21일 저녁 미국 뉴욕 맨해튼의 재팬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세미나. 한 패널이 일본이 미국에 제안한 인프라 투자 지원 프로젝트에 중국의 참여 가능성을 거론했다. “안 될 것 없죠. 트럼프 정부가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요.” 다른 패널도 맞장구쳤다.

이날 세미나는 재팬소사이어티와 차이나인스티튜트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중국과 일본의 국익을 대변하는 민간창구인 두 단체가 공동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주제는 ‘트럼프 정부하에서 미·중·일 삼각 경제관계’. ‘협력’이라는 단어가 빠졌지만 동아시아에서 세 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할 공조 방안을 타진해보자는 취지였다.

뉴욕과 워싱턴을 1시간에 주파하는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건설 프로젝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 정상회담에서 제안했다. 기술 지원뿐만 아니라 투자 파트너로 참여해 미국의 낙후한 인프라 재건을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자금을 대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일본과 중국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중·일 간 관계는 나쁘지 않습니다. 중국 관광객도 꾸준히 일본을 찾고 있지 않나요?” 중국 측 패널로 나선 안 리 뉴욕대 교수가 말했다.

이날 패널들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지만 귀착점은 한반도였다. 미·중·일 3자 관계를 개선하는 데 북한 ‘처리’를 둘러싼 이견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미국이 자위권을 앞세워 대북 선제공격에 나설 경우 중국 정부가 어느 선까지 용인할 수 있을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300여명에 달한 방청객 중에는 지역 전문가와 월가 투자은행 관계자도 다수 눈에 띄었다. 각국을 대표해 나온 패널은 당국자가 아니라 민간 전문가들이었다.

이날 못내 안타까웠던 것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정작 한국을 대표하는 패널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예 초청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민간 외교현장에서 ‘한국 건너뛰기’가 번지는 게 아닌지 두려웠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