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은기 씨가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행복한 정원’을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서양화가 김은기 씨가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행복한 정원’을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동화의 힘은 현실의 여러 가지 제약을 쉽게 뛰어넘는 데 있다. 상상력으로 포장된 동화적 문법은 회화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은 유대인의 비극적 숙명과 정신세계를,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는 음악적 감수성으로 포장한 환상미를 동화적 문법으로 풀어내 서양미술사에 이름을 올렸다.

‘동화 회화’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김은기 씨(45)가 27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김씨는 동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화면에 파스텔톤으로 아기자기하게 풀어내 왔다. 2002~2006년에는 KBS ‘TV 동화 행복한 세상’ 프로그램에서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주목받았다.

다음달 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행복한 정원’. 동글동글 귀여운 스노맨을 비롯해 알록달록한 꽃과 나비 등을 소재로 현대인의 행복과 기쁨, 즐거움을 정원처럼 묘사한 근작 20여점을 걸었다. 형형색색의 화면에는 동심의 눈으로 꿈꾸듯 그린 현대인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김씨는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자기만의 비밀 정원이 있다”며 “유년의 추억을 비롯해 미래의 꿈, 주변의 따뜻한 풍경을 모아 정원처럼 꾸몄다”고 했다. 스노맨을 비롯해 비밀의 정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법의 설탕 두 조각 등 동화책에서 만난 행복한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현실이 살 만한 세상으로 변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작품에 담아냈다는 얘기다.

그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어린 시절의 희망이 발현된 것 같다. 스노맨이 가족과 스케이트를 타러 가고 소풍도 다닌다. 꽃 그림은 단순히 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쁜 꽃을 모아 꽃다발을 만든 뒤 그 속에 행복을 기원하는 축하카드를 그려 넣는다. 친숙한 소재를 연극처럼 꾸미고 고운 색을 칠한 그의 작품은 동화책의 삽화나 부드러운 발라드 음악 같기도 하다.

김씨의 작품은 어린이를 위한 그림에서 어른을 위한 동화로 확장해가고 있다. 아늑한 숲속의 데이트, 도시인들이 꿈꾸는 정원, 첫사랑의 그리움, 행복한 가족 등 어른들이 갈망하는 장밋빛 인생을 화려한 색감으로 동화처럼 수놓았다. 그는 “현대인의 고단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인연을 맺고 마음을 넉넉하게 열면서 어른들의 근원적 동심을 기록하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