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자살의 사회심리학
미국 백인 남성의 자살률이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교졸업 이하 학력자의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프린스턴대 연구팀에 따르면 2015년 이들의 자살률은 2000년의 두 배에 육박했다. 15년 전에는 백인 고졸 남성의 자살률이 히스패닉이나 흑인보다 낮았으나 2015년엔 현저히 높아졌다. 예전엔 고교 졸업만으로도 안정된 생활과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절망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소득 불평등이 원인인 것은 아니다. 이들보다 소득이 낮은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자살률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결국 정신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

정신적 불안은 문제해결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 영국의 한 의학저널은 논리적 사고가 약한 사람의 자살 확률이 일반인의 2~3배라고 보고했다. 군에 입대하는 스웨덴 남성들의 징집기록을 근거로 18세에서 44세까지 26년간 추적한 결과 문제해결 능력 부족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한국은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 노인 자살률도 1위다. 2011년 10만명당 79.7명에서 2015년 58.6명으로 줄긴 했으나 여전히 OECD 평균의 3배다.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라고 한다. 2015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67만명 중 42%가 60세 이상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치료가 입원 중심이어서 기피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이 사회에 복귀했을 때 계속 관리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도 비슷하다. 자살자의 3분의 2가 심신건강 때문이었다. 일본 경찰청의 자살분석 자료를 보면 우울증과 신체질병 등 심신건강 문제가 68%, 생활고나 다른 문제는 20%선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자신이 우울증인 것을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스스로 인지하는 부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울한 기분보다는 그로 인한 신체 증상만 호소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곧바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요즘은 약효가 좋고 부작용도 적은 편이다. 적절히 복용하면 2주 후부터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긍정적인 사고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운동이나 영화 등 취미 생활로 심신의 활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나마 일본은 10년 전부터 의료 시스템을 정비하고 자살방지 캠페인을 벌인 덕분에 자살 인구가 지난해 2만1897명으로 줄었다. 22년 만에 최저라고 한다. 우리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