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화가 르코르뷔지에
20세기를 대표하는 혁명적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그림들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전시를 봤다. 건축가로서의 명성이 더 높지만 늘 자신을 화가라고 여기며 산 그에게 그림은 이상적인 자유 실현의 길이었고, 건축은 윤리와 규제를 동반한 무거운 현실적 과제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피카소와 르코르뷔지에는 서로를 인정하고 경외심에 가득차 찬탄을 금치 못한 20세기 강적들이다. “사람들은 건축가로서의 나밖에는 모릅니다. 화가로서는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건축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림이라는 운하를 통해서입니다.”(르코르뷔지에)

입체주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를 아우르는 수많은 그의 그림과 벽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어록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중에서도 이런 말은 그가 누군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복잡함에 주저하지 말고 단순함에 도달할 것, 어느덧 잃어버린 내 인생의 꿈을 다시 좇을 것. 젊은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더 젊어져갈 것.” ‘4평의 기적’을 제안하며 본질만이 남는 작은 위대함을 역설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은 장식과 화려함을 근간으로 하는 유럽 건축에 대혁명을 일으킨,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빈자의 건축이라 할 것이다.

1945년 심각한 주택난을 겪은 프랑스 정부는 대규모 공동주택에 관한 계획을 르코르뷔지에에게 맡긴다. 일생 동안 끊임없는 반대에 부딪혀 온 그는 ‘건축은 투쟁의 예술’이라는 말을 남겼다. 왜 늘 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림이 자기 자신과의 투쟁인 것에 비해, 현실화되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조율해야만 하는 건축예술의 어려움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항상 장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언제든지 안 된다고 말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세유에 있는 그의 혁신적 건축물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세계 최초 대규모 현대식 아파트의 모티브가 됐으며, 하나의 도시가 건물 안에 공존하는 콘셉트는 오늘날 주거시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건물 내부를 일부 개조해 호텔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예술적 꿈과 삶의 열정을 물려준 화가이면서 건축가인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훈데르트바서다. 르코르뷔지에가 군더더기 없는 직선을 사랑했다면, 훈데르트바서는 곡선을 사랑한 회화적 건축의 창시자다. 40여 년 전 빈에 처음 갔을 때, 도시 한복판에 있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바라보며 함성을 지른 기억이 난다. 더구나 그 아름다운 건물은 서민들이 사는 시민아파트이며 슈피텔라우의 건물은 쓰레기 소각장이기도 하다. 강렬한 색채로 환상적 꿈들을 그려낸 화가 훈데르트바서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주장하는 친환경적인 건축 철학을 현실화했다.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쓰레기를 소각한 에너지를 난방 에너지로 활용하는 아름다운 쓰레기 소각장을 상상해보라. 다재다능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가 20세기에 환생했을지도 모르는 그들이 남긴 예술이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기쁨을 맛보게 해준다.

전시장 벽에 적혀 있던 르코르뷔지에가 남긴 죽음에 대한 한 마디를 잊을 수 없다. “죽음은 우리 각자에게 출구와 같다네. 나는 왜 사람들이 죽음 앞에 불행해 하는지 모르겠네. 그것은 수직에 대한 수평일세. 보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지.”

황주리 <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