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 어떤 유전자 조작을 하고 싶으신가요?”

한 의사가 아이를 가진 부모에게 묻는다. 부모는 들뜬 표정으로 답한다. “금발에 녹색 눈이 좋겠죠. 키도 크게 해주세요.” 의사는 “외모 인자 수정은 가장 쉬운 작업”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러자 부모는 더 많은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아이를 원합니다.”

[책마을] 인간과 로봇의 공존…SF에서 답을 찾다
낸시 크레스의 공상과학(SF)소설 《스페인의 거지들》에 나오는 내용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아이의 모든 것을 부모 마음대로 정한다. 더 나아가 남보다 더 출세하길 바라며 잠도 자지 않는 특별한 능력까지 갖추길 원한다.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터무니없는 SF소설 얘기로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유전공학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SF의 세계가 현실로 다가올 날이 머지않았다.

《SF의 힘》은 그저 막연한 공상으로만 끝나지 않고 눈앞의 현실이 될 SF 속 내용을 살펴보고, 미래에 일어날 일과 대처 방안에 대해 고민한다. 저자인 과학 칼럼니스트이자 SF 작가인 고장원 씨는 “과학은 전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SF소설 역시 관찰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며 “인류 스스로 과학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한 SF소설이 커다란 변화에 앞서 던지는 문제 제기와 통찰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SF소설은 신기술을 주도하는 차세대 리더들에게 영감을 주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열쇠가 됐다. 스티브 잡스는 조지 오웰의 SF소설 《1984》를 리메이크한 애플 광고를 선보이며 “빅브러더와 같은 거대 기업에 맞서 테크놀로지의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는 “어떤 철학책보다 SF소설이야말로 나의 꿈을 이뤄준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SF소설에서 보던 로봇의 진화도 현실이 돼가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법도 SF소설에서 찾는다. 이언 M 뱅크스의 《컬처 시리즈》는 로봇과의 상생을 강조한 소설이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로봇이 인류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하며, 인간은 이들을 자신과 똑같은 인격으로 존중한다. 로봇은 투표권은 물론 생명의 존엄성도 똑같이 인정받는다. 로봇도 자신이 기여하는 만큼 인간과 동일한 대접을 받으며 상생하는 것이다.

저자는 “로봇이 실제로 인간 못지않은 단계에 도달한다면 차라리 노예에서 해방시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생산적”이라며 “무조건 로봇을 경계하고 배척하려는 옛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미래 흐름에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