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28)] 답설심매불견매(踏雪尋梅不見梅) 죽간시견일지매(竹間時見一枝梅)
[생각을 깨우는 한시 (28)] 답설심매불견매(踏雪尋梅不見梅) 죽간시견일지매(竹間時見一枝梅)
이승소(李承召, 1422~1484)는 본관이 양성(陽城)이며 호는 삼탄(三灘)이다. 조선 세종 때 등용된 뒤 집현전과 예문관에서 근무했으며 충청도 관찰사 및 이조와 형조의 판서를 역임했다. 여러 분야에 조예가 남달랐고 신숙주 등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편찬했다. 개인문집인 삼탄집(三灘集)이 전한다.

삼탄 선생은 이른 봄 성급하게 원림의 매화를 찾아가는 탐매(探梅)를 즐겼다. 벼슬살이에 지쳤을 때는 북한산 진관사(津寬寺)에 머물고 있는 명신(明信) 스님을 찾았다. 수다를 통해 스트레스가 풀렸는지 “조계(불교)의 물을 빌려 갓끈(벼슬) 때문에 생긴 번뇌를 씻었다(借曹溪水濯塵纓)”고 했다. 어떤 때는 일암전(一庵專) 대사와 함께 흰눈을 녹여 끓인 물에 우려낸 차(茶雪水煎)를 마셨다. 아마 그 차에 매화 한 잎까지 띄웠다면 모든 걱정거리가 순식간에 사라졌을 터다.

매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희소성에 있다. 많은 나무가 아니라 한 그루다. 한 그루 가운데 오직 한 가지에만 핀 것이 으뜸이다. 그래서 일지매(一枝梅)라고 부른다. 혼자 조용히 감상해야 제맛이다. 일본의 다조(茶祖)로 불리는 센리큐(千利休, 1522~1591) 선사는 이른 봄에 일지매를 실내로 끌어들였다. 소박하고 작은 다실 안에는 작은 족자 한 점과 꽃 한 가지만 꽂아둘 뿐이었다. 단순절제 속의 처연한 아름다움(와비사비, び寂び)을 추구한 것이다.

일지매는 꽃이름으로 그치지 않았다. 조선후기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추재기이(秋齋紀異)에는 협객의 대명사로 기록됐다.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 어려운 사람들과 나눴기 때문이다. 밤손님으로 다녀간 현장에는 일지매를 붉은 색으로 그려 놓는(自作朱標刻一枝梅爲記) 담대한 미학까지 추구했다. 혹여 다른 좀도둑에게 누명을 씌울까봐 염려한 까닭이다. 아름다움과 배려심으로 미뤄보건대 혹 여성협객이 아닐까 하는 상상력까지 더해졌다. 뒷날 소설, 만화,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각색을 거듭했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