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에는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고 정치를 복원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탄핵이 인용된 지 사흘째인 12일 평온을 되찾은 서울 재동 헌재 앞.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에는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고 정치를 복원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탄핵이 인용된 지 사흘째인 12일 평온을 되찾은 서울 재동 헌재 앞.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남긴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협치를 통해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라는 것이다. 이는 새삼스러울 게 없는 헌법정신이다.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통합의 정치로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은 궤도를 벗어난 헌법적 가치를 바로세우는 비정상의 정상화라 할 수 있다.

헌재는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이 기업으로 하여금 재단법인에 출연하도록 한 행위는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최고 권력자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저버리고 민간 영역을 침범하고 간섭하면 헌법 위반으로 단죄받는다는 게 이번 탄핵사태의 교훈이다. 정부나 권력이 기업 경영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다.

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기업경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헌법 23조 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다”고 규정했고, 126조는 “국방상, 국민경제상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기업을 국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같은 헌법 조항을 위반했다. 비단 박근혜 정부뿐만이 아니다. 역대 정권이 다 그랬다. 준조세 명목으로 기업 출연금을 뜯어내고 정권의 핵심 사업에 기업을 동원하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민간기업 인사 관여까지 서슴지 않았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비춰보면 역대 정권의 이런 일탈 행위는 모두 헌법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각종 준조세나 권력의 간섭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차제에 ‘정경유착 고리’를 끊고 투명경영을 실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사회 중심 경영 등 새로운 변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 노조도 시대 변화에 맞게 무리한 요구와 투쟁 중심 노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차기 대통령, 협치는 선택 아닌 필요충분조건"

정치권에 대한 가장 큰 국민적 요구는 협치다. 5월 초에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누가 되든 여소야대의 소수 정권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안정적 정치 기반이 허약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이 생락돼 준비 없이 맞는 정권이다. 치밀한 검증과정 없이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검증해도 말 많고 탈 많은 게 역대 정권의 인사였다. 약속한 정부조직 개편도 해야 한다. 중국과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과 예상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잇단 북한의 군사 도발 등 출구가 안 보이는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차기 대통령 앞엔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대결과 갈등 정치로는 풀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협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이다. 협치는 말처럼 쉽지 않다. 양보를 대전제로 한다. “대통령은 야당을 끌어안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이고 야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기 정부와 협력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게 정치 원로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협치는 국민의 명령이다. 당장 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정부조직 개편은 물론 내각을 구성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수위 과정을 거친 역대 정권도 몇 달씩 걸렸다.

정국 운영도 비슷하다. 여당만으로는 정국 운영이 불가능하다. 야당의 협조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권과의 소통에 무심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의 독주와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협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차기 대통령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재창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