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탄핵 인용' 너 어디서 왔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비롯된 탄핵정국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탄핵 ‘인용’이니 ‘기각’이니 하는 말이 매일 입에 오르내리며 일상어가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인용’이란 말, 아직도 낯설고 어렵다. 소통 실패로 비롯된 탄핵 사태인데, 그것을 전하는 말도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국어학자인 목정수 서울시립대 교수가 ‘한글새소식’(한글학회 간) 2월호에서 이를 지적했다. 요즘 말하는 인용은 다른 말로 하면 용인(容認), 즉 인정하여 용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용이라 하면 우선적으로 ‘남의 말이나 글을 끌어다 쓰는 것’을 떠올린다. 그 인용(引用)이 인용(認容)을 이미 묻어 버렸다는 것이다. 소통이 어그러지는 것은 거기서 비롯된다.

목 교수는 애초에 이를 ‘인정한다(또는 용인한다)’고 했으면 금세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예 탄핵을 ‘받아들인다’고 했으면 더 좋았다. 이걸 한자어로 한 번 비튼 게 ‘인정해 용납’하는 것이고 또 한 번 꼰 게 ‘인용’이다. ‘받아들임’에서 이단옆차기로 탄생한 게 ‘인용’인 셈이다. 이 말은 중국엔 없는 글자다. 우리는 과거에 일본 법조문을 베낄 때 딸려 들어온 용어를 여전히 쓰고 있다.

우리 주위에 소통을 해치는 이런 낡은 표현은 곳곳에 널려 있다. 병원을 비롯해 조금 큰 건물에는 ‘탕비실’이란 데가 있다. 말만 들어선 뭐하는 덴지 알 수가 없다. 한자로는 ‘湯沸室’이다. 일본식 한자말이라 국어사전에도 없다. 물을 끓이거나 식기를 씻을 수 있도록 한 곳인데, 청소도구 같은 것을 두기도 한다. 간이조리실, 휴게실, 다용도실 등 용도에 맞게 쓰면 누구나 알아듣는다. 어느 사회복지관에서 주민을 위해 연 바자회 안내문에 ‘행복나눔바자회를 실시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냥 바자회를 연다고 하면 되는데 굳이 ‘실시한다’고 한다. 동네 어귀에 있는 한 가게엔 이런 안내문이 걸려 있다. ‘OO생협 매장의 오픈시간은 10시입니다.’ 말이 뒤틀려 있으니 당연히 어색하다. ‘OO생협 매장은 10시에 엽니다’고 하면 그만이다. 외래어·한자어를 써야 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탓일까. 말과 글에도 주자학적 질서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우리말은 공급자 시각에서 다뤄져 왔다. 이젠 말을 쓰는 사람 눈높이에 맞춰 볼 때가 됐다. 그래야 우리말이 오른다. 언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