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골드만삭스가 지배하는 세상
“골드만삭스가 돌아왔다.” 요즘 미국 월가(街)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골드만삭스는 탐욕의 화신이자 대마불사의 상징으로 몰매를 맞았다. 지난 8년간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 등 각종 규제로 인해 움츠러들었다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1869년 마르쿠스 골드만과 새뮤얼 삭스가 공동창업한 골드만삭스는 2015년 기준 매출 392억달러, 영업이익 87억7000만달러, 임직원 3만5000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투자은행이다. 사환 출신인 시드니 와인버그야말로 영세한 유가증권 거래회사였던 골드만삭스를 정상으로 키운 주역이다. 1930년대 단순 거래 업무를 투자은행업으로 과감히 전환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의 경영자문위원회를 이끌었고 2차 세계대전 때 전시생산국 부국장으로 군수물자 관리통제 업무를 수행했다. 전후에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존슨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에 응했다. ‘미스터 월스트리트’로 불렸다. 1956년 포드자동차의 기업공개 주관사가 돼 성공적으로 증시 상장을 주도, 시장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 1980~2000년대 레이건의 감세 및 규제 완화, 클린턴의 금융시장 개편 등 금융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정상을 지켜왔다.

트럼프 신(新)행정부에 다수의 골드만삭스 출신이 진입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맬컴 턴불 호주 총리,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은행 총재, 제이 클레이턴 증권거래위원장 내정자 등이 있다.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과 행크 폴슨은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선거 유세 중 “골드만삭스는 미국 근로자를 강탈한 글로벌 세력”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럼에도 골드만삭스 출신이 중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는 공공서비스와 기부를 중시하는 전통이 회사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20대에 입사해 50세 전후가 되면 평생 돈 걱정을 안 해도 될 만큼 부를 축적한다. 이후에는 자선활동을 하거나 공직에 진출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처럼 자리 잡았다. “다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추구하는 바다”라는 주장에서 공직 중시의 경영 풍토를 엿볼 수 있다. 정부와 민간부문의 장기적 협력관계를 추구하며 공직 마인드가 있는 인재를 채용하는 인사정책도 이런 관행에 영향을 미쳤다.

골드만삭스는 가장 우수한 인재를 영입해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필수요건이다. 회사는 종업원에게 특별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최고운영책임자 출신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의 행보는 단적인 예다. 오하이오주 전기기술자 아들로 심한 난독증에도 불구하고 US스틸 자회사 영업직으로 시작해 회사의 2인자가 됐다. 투견(鬪犬)이라 불리는 그는 트럼프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추천으로 영입됐다. 배넌 등과 달리 실용적 시장주의자다. 하루에 다섯 번씩 트럼프와 면담하며 인프라 투자, 감세, 규제 완화 등을 주창하는 트럼프노믹스의 핵심 참모가 됐다.

‘정경유착의 화신’ ‘회사 이익 우선’과 같은 비판도 거세다. 《돈과 권력》의 저자 윌리엄 코언은 “골드만삭스는 완벽한 탐욕의 상징”이라며 정치권력과의 지나친 유착을 비판했다. 퇴임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세 번의 특강료로 67만5000달러를 지급하고,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후보에게 최대 정치자금을 기부한 사실은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회사 풍토를 잘 보여준다. 고객 정보를 이용하고 고객의 이익에 우선해 회사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비판도 무성하다.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유》의 저자 그레그 스미스는 고객을 적으로 생각하고 회사의 행동이 미칠 파장에 무관심한 풍토를 신랄하게 고발했다. 반(反)월가의 선봉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2008년 위기의 중심에 있던 회사 출신에게 경제정책을 맡긴다는 사실에 속이 뒤틀린다고 개탄했다. 골드만삭스가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과연 트럼프가 공약한 4% 성장과 2500만개 일자리 창출을 달성할 수 있을까.

박종구 < 초당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