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오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삼성 79년 역사상 오너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한정석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는 17일 새벽 “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 사실과 추가 증거 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국을 휩쓴 ‘최순실 쓰나미’가 국내 최대 기업이자 글로벌 거함인 삼성까지 강타한 것이다. 이 부회장 구속으로 ‘선장’을 잃은 삼성은 충격에 빠졌고 영장 재청구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특검은 다시 수사동력을 얻게 됐다.

◆법원, 특검 손 들어줘

법원은 결국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달 19일 이 부회장에 대한 첫 번째 영장을 기각당한 특검은 절치부심해 지난 14일 영장을 재청구했다. 기존 뇌물공여와 횡령, 위증 혐의에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등 두 개 죄목을 추가했다. 삼성전자가 최순실 씨 측에 지원한 기존 말을 회수하는 것처럼 허위계약서를 작성해 최씨의 범죄수익을 은닉하고, 외환당국에 신고 없이 독일로 송금해 재산을 국외로 도피시켰다는 얘기다.

16일 오전 10시30분부터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은 오후 6시께까지 7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3시간40분 만에 마무리된 1차 영장 때보다 법리공방이 더욱 치열했다는 얘기다. 법조계에선 “사상 최장 시간인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이례적으로 식사도 거르고 한 차례 휴정까지 한 뒤 심사를 재개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구속 결정에 대해 한 변호사는 “특검이 확보한 추가 혐의와 증거에 법원이 손을 들어줬다”고 말했다. 특검은 영장을 재청구하며 “이 부회장 혐의 중 가장 중요한 뇌물죄 구성 요소가 1차 영장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해졌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이 여러 가지 혐의를 추가하면서 ‘구속 확률’을 높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뇌물죄 법리가 여전히 약했지만 혐의들이 추가됐고 그만큼 걸리는 부분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법원이 법리보다는 여론을 고려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첫 영장 기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법원이 연달아 같은 결정을 내리기가 부담스러웠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특검이 추가 혐의라는 명분을 법원에 줬고 법원이 이를 받아 결정을 내린 것 같다”며 “여론에 좌우되는 법원 판단은 결국 사법부 신뢰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리논쟁은 이제부터’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구속이 곧 유죄는 아니고 구속된 뒤 재판에서 무죄가 된 경우는 허다하다”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면 양측의 법리공방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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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 특검, 청와대 조준

이 부회장 구속에 ‘올인’한 특검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특검은 공식수사 개시 첫날(지난해 12월21일)부터 국민연금을 압수수색하며 삼성을 정조준했다. 지난달 19일 영장이 기각된 뒤에는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등을 추가 소환하고 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폭을 넓혔다. 사실상 수사기간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삼성 뇌물죄 수사와 이 부회장 구속에 집중한 것이다.

기사회생한 특검은 마지막 단계인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에 집중할 전망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 부회장 영장이 또 기각됐다면 특검은 소득 없이 마무리되는 수순을 밟았을 것”이라며 “다시 박 대통령을 겨냥할 힘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이르면 다음주 박 대통령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특검 연장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일정이 조금 꼬이긴 했지만 특검 수사는 결국 잘 진행되고 있다는 명분이 생겼다”(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것이다. 특검은 이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측에 공식적으로 수사기간 연장 신청서를 보냈다.

박한신/이상엽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