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의 마술…'혈압 낮추는 콩' 나온다
국내 연구진이 DNA를 편집하는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콩과 병에 강하고 잘 자라는 야생 담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김진수 단장과 김상규 연구위원이 이끄는 연구진은 신형 유전자가위(CRISPR-Cpf1)를 이용해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올레산을 많이 함유한 콩을 만들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16일 발표했다.
유전자 가위의 마술…'혈압 낮추는 콩' 나온다
생물의 유전 정보를 담은 DNA를 자르고 편집하는 유전자가위는 생명과학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기술이다. 현재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는 DNA를 자르는 절단효소(단백질)와 크리스퍼RNA(crRNA)를 붙여서 제작한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RNA만 바꾸면 원하는 DNA 염기서열을 잘라낼 수 있어 활용 범위가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에 연구진이 활용한 기술은 이보다 더 발전한 3.5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진은 지난해 절단 효소인 Cas9단백질 대신 Cpf1을 쓰면 더 작은 표적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찾아간다는 사실을 처음 증명했다.

연구진은 이 신형 유전자가위를 직접 콩에 주입해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FAD2)를 교정했다. FAD2 유전자에 변화를 주면 올레산 함량이 올라간다. 올리브유에 많이 들어 있는 올레산은 혈압 저하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기능이 있다. 연구진은 야생 담배 유전자 교정도 시도했다. 야생 담배에 있는 AOC 유전자에서 성장을 방해하는 부분을 잘라내 잎도 크고 병충해에 강한 야생 담배를 만들었다.

최근 들어 국내외에서는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식물에서 해로운 성분을 없애거나 유전적으로 사라진 좋은 성분을 되살리는 연구가 활발하다. 한국식품연구원 장내미생물연구단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와인과 맥주, 빵 제조에 사용되는 효모에서 발암 물질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바이오벤처 셀레틱스는 유전자가위로 몸에 해로운 트랜스 지방을 만드는 유전자를 잘라낸 콩과 색깔이 변하지 않는 감자를 개발하고 정기 시식회를 하고 있다. 콩과 감자뿐 아니라 훨씬 오래 사는 양송이버섯, 알갱이가 무르지 않는 옥수수 등도 개발됐다.

수십억달러 가치로 추산되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특허권 분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연방특허청은 15일(현지시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둘러싼 특허권 분쟁에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의 손을 들어줬다.

UC버클리 연구진은 2014년 MIT와 하버드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가 특허권을 인정받자 곧바로 자신들이 먼저 기술을 발명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UC버클리 연구진은 2013년 3월 가장 먼저 미국 특허청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브로드연구소의 특허권을 인정한 것일 뿐 UC버클리가 앞서 낸 특허가 무효가 된 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