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자오웨이궈 칭화유니그룹 회장, 양떼 몰던 산골 소년 칭화대 인맥으로 승승장구
3년 전만 해도 세계 반도체업계에서 칭화유니그룹은 이름조차 낯선 기업이었다. 하지만 2015년 하반기부터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세계 반도체 시장을 흔들고 있다. 올해 들어선 700억달러(약 84조원)를 들여 반도체 공장 세 곳을 동시에 건설한다고 발표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경쟁 업체를 바짝 긴장시켰다.

중국 ‘반도체 굴기(起·부흥을 뜻하는 중국식 표현)’의 기수를 맡은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최고의 이공계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대에서 세운 중국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이다. 칭화유니그룹의 중국어 명칭 ‘쯔광(紫光·보라색 빛이라는 의미)’도 칭화대를 상징하는 색상인 보라색에서 따온 것이다. 1988년 설립된 후 2010년 민간 자본을 유치, 혼합소유제를 도입한 뒤 2013년 중국 반도체 기업 잔쉰(展訊)을 인수하면서 집적회로 산업에 진출했다. 2014년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28나노 시스템온칩(SoC) 스마트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는 등 중국 반도체 업계의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칭화유니그룹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이 자오웨이궈(趙偉國) 회장(50)이다.

양떼 몰던 소년, 호랑이가 되다

자오 회장은 1967년 중국 서부 끝자락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샤완현에서 2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공산당 정권에 ‘성분’이 좋지 않은 위험 인물(우익 분자)로 찍혀 이곳으로 밀려났다. 11세까지 돼지와 양을 키우며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부활한 대학입학시험을 통해 1985년 최고의 명문인 베이징 소재 칭화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신장의 중심 우루무치에서도 서쪽으로 수백㎞ 떨어진 산골에서 칭화대에 입학한 건 그가 처음이었다.

칭화대에 입학한 뒤 인생이 달라졌다. 대학 시절에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에서 TV를 수리해 학비를 벌었다. 칭화대를 졸업한 뒤 중국 정보기술(IT)업계에서 10년 동안 엔지니어로 활동했다. 그 사이 전자 부품업체 둥팡궈신도 세웠다.

이후 칭화대에서 다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칭화유니그룹에 입사했다. 1997년 칭화유니를 떠나 막 증시에 상장한 칭화대의 또 다른 과학기술 회사 칭화둥팡에 합류했다. 당시 무섭게 피어오르던 IT 거품과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은 자오 회장을 성공의 길로 인도했다. 1998년 50만위안(약 8400만원)을 투자해 의료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다. IT 열풍 덕에 어렵지 않게 500만달러의 벤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큰 돈을 쥐게 된 자오 회장은 2004년 100만위안을 가지고 고향인 신장으로 돌아가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었다. 경제 성장과 함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와 맞물려 그의 부동산 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100만위안으로 시작한 부동산 사업은 불과 5년 만에 45억위안(약 752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자오 회장은 신화망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는 중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여서 부동산 투기 열풍도 극에 달했다”며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찍어내는’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성공의 핵심 키워드는 ‘칭화대’

[Global CEO & Issue focus] 자오웨이궈 칭화유니그룹 회장, 양떼 몰던 산골 소년 칭화대 인맥으로 승승장구
자오 회장은 기회를 포착하는 데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그는 칭화유니그룹의 혼합소유제 추진 과정에서 또 다른 성공의 기회를 보게 된다. 2009년 칭화유니그룹은 자오 회장이 세운 베이징첸쿤투자그룹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 덕분에 그는 같은 해 6월 칭화대 추천으로 칭화유니그룹 회장에 오른다. 자오 회장은 “당시 칭화대 산하 기업 가운데 칭화유니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며 “경영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내가 투자할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그의 개인 기업인 젠쿤그룹이 칭화유니그룹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다. 칭화홀딩스에 이어 그는 2대 주주에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자오 회장은 모교인 칭화대 인맥을 통해 기업을 인수, 약 20억달러의 재산을 모았다. 그의 인생과 성공에서 ‘칭화대’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칭화대를 통해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를 모두 거머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배고픈 호랑이

칭화유니그룹 전신은 칭화대과학기술개발총공사다. 1988년 칭화대가 과학기술 성과를 상용화하기 위해 설립한 첫 산학 연계 종합 기업이다. 1993년 칭화유니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칭화유니는 자오 회장이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약제, 음료 등을 생산하는 평범한 국영기업이었다.

지금의 칭화유니를 만든 주인공이 자오 회장이다. 그는 회사가 보험과 펀드 투자로 벌어들인 돈을 활용해 반도체 분야에 뛰어들었다. 중국이 경제 대국에서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반드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회사는 2013년 중국 양대 모바일 반도체 회사인 스펙트럼커뮤니케이션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흡수해 중국 최대 반도체 메이커로 부상했다. 이후 최근까지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을 거듭해왔다. 2015년 10월 낸드플래시 강자로 꼽히던 미국의 샌디스크를 손에 넣기 위해 190억달러를 들여 우회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같은 달엔 대만 반도체 패키지 기업 파워텍 지분 25%를 6억달러에 매입해 최대 주주에 올라섰다.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응용프로세서(AP) 시장에서 퀄컴에 이어 세계 2위 회사인 대만 미디어텍도 인수했다.

이런 공격적인 M&A는 다른 경쟁국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2015년 7월 미국 최대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에 230억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했지만 미국의 국가안보 침해 우려 탓에 무산됐다. 미국 하드디스크업체 웨스턴디지털 지분 15%를 38억달러에 인수하려던 계획도 미국 당국의 규제로 실패했다.

칭화유니그룹에 거는 중국 정부의 기대는 크다. 혼합소유제도를 도입해 기술 혁신과 기업 성장에 성공한 ‘모범 기업’인 데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중국 정부 지도자는 물론 후진타오 전 주석과 원자바오 전 총리 등도 칭화유니그룹을 방문해 시찰했다.

자오 회장은 해외 대신 중국 국내 투자에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우한, 청두, 난징 등 세 곳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최근 중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4~5년 안에 칭화유니를 세계 3대 반도체 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