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이 상 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작년 건설수주 실적은 165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택경기 활성화에 힘입어 건축공사 수주 실적이 126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6% 증가했다. 하지만 토목공사 수주 실적은 38조2000억원으로 16%나 줄었다. 민간 주택시장의 호황에 가려 공공 토목시장의 심각한 불황은 보이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정부는 5년간(2016~2020)에 걸쳐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연평균 6.0%씩 줄이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SOC스톡은 충분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 이상이며 전 세계적으로 국민소득 증가에 따라 건설투자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 추세라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 SOC스톡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국토면적당 연장(㎞) 기준으로만 보면, 주요 20개국(G20) 중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1위, 일반국도는 2위, 총연장은 6위다. 그런데 인구밀도가 높고 국토 면적이 좁은 우리나라 특성을 반영한 기준으로 평가해 보면 결론이 달라진다. 1인당 연장 기준으로 보면 고속도로는 8위, 일반국도는 13위, 총연장은 18위에 불과하다. 이처럼 어떤 국제 비교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SOC스톡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은 달라진다. 출퇴근 시간이나 혼잡률 등 이용자 편의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더더욱 우리나라의 SOC스톡이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높은 인구밀도와 좁은 국토 면적을 반영한 국제 비교 기준으로 보면 우리의 인프라 수준이 OECD 국가 평균 수준 이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또 OECD 국가 평균 수준이 우리의 목표가 돼서도 안 된다. 벤치마킹 대상을 찾고자 한다면 싱가포르, 홍콩, 스위스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 경쟁력을 가진 나라를 선택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제시하고 있듯이 인프라 경쟁력 순위는 사실상 글로벌 국가 경쟁력 순위이기도 하다.

국민소득이 늘수록 인프라 투자가 줄어든다는 주장도 오해다. OECD 국가의 장기(1970~2012) 자료를 보면, 1인당 소득이 증가할수록 건설투자 ‘비중’은 줄었어도 ‘금액’은 늘었다. 또 2015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14.6%로 OECD 국가 평균인 12.0%보다 높았다. 하지만 주택·건축 중심인 민간 건설투자 비중은 11.6%였고 인프라가 대부분인 정부 건설투자 비중은 3.0%에 불과했다. GDP 대비 3%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의 인프라 투자가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줄여야 할 이유도 없다.

이처럼 우리 SOC스톡은 충분치 않고 선진국 수준보다 뒤처져 있으며, GDP 대비 인프라 투자도 부족하다는 인식 아래 인프라 정책의 새 판을 짜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2020년까지 매년 6.0%씩 SOC 예산을 줄이겠다는 국가재정 운용계획부터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프라 투자 축소를 정당화하고 있는 논리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기존 인프라 노후화에 대응해 성능을 개선하고 수명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경제성장과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신규 인프라도 대거 발굴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스마트 도시와 스마트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인프라 정책의 목표는 시설물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이용자 편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육상교통 마스터플랜(2013)은 ‘10명 중 8명이 도보 10분 이내 역 접근, 대중교통 이용 20㎞ 미만 이동 시 85%가 60분 내 도착, 혼잡시간대 대중교통 이용 비율 75%’를 목표로 제시했다.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세계 1위의 인프라 경쟁력을 보유한 싱가포르도 지속적으로 인프라 투자를 하고 있다.

작년까지 건설산업과 경제를 지탱해 온 주택시장은 이미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가계부채 급증과 미국발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규제가 강화되고 있고 추가적인 주택경기 부양도 기대하기 어렵다. 저성장 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제는 확장적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프라 투자 확대를 막아온 잘못된 논리와 주장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이상호 <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