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저처럼 조그만 출판사나 꾸리고 있는 사람을 뭐하러 인터뷰하러 오셨어요.”

출판사들이 몰려 있는 경기 파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성웅 유유출판사 대표(44)는 몰아치는 한파를 다 물리칠 듯 따뜻하고도 수줍게 웃었다. 그는 2012년 창업한 1인 출판사 유유의 사장이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조 대표와 편집자, 신입사원 단 세 명이다. 하지만 글쓰기 안내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을 비롯해 50여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인문 서적 마니아 사이에선 “유유의 책은 믿고 볼 수 있다”는 입소문까지 탄 ‘1인 출판계의 스타’다.

“저는 다른 걸 바라진 않아요. 그냥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만나고 싶은 독자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죠.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요.” 조 대표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집 팔아 1억원으로 창업

조 대표가 처음부터 출판업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한국외국어대 중국어학과를 졸업한 뒤 외주제작사에서 일하다가 서른 살이던 2003년 출판사 생각의나무에 입사하며 출판계에 들어섰다.

[人사이드 人터뷰] 조성웅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만나고 싶은 독자를 만나기에 행복"
“우연이었어요. 처음엔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지만 막상 제작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저와는 맞지 않더라고요. 왠지 앞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출판 쪽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어차피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생각의나무를 시작으로 김영사, 돌베개 등 대형 출판사에서 일하며 ‘나만의 책’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조 대표는 “대형 출판사에선 책마다 프로젝트팀이 다 따로 있다”며 “대략적인 기획 방향은 출판사 차원에서 결정하고, 프로젝트팀에서 기획과 작가 만남, 마케팅 등을 맡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출판사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출판 실무 대신 관리자로 변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며 “계속 실무를 맡고 싶었고, 경험을 바탕으로 ‘이젠 내 회사를 세워 독립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 후 자신과 함께 출판계에 몸담고 있던 부인을 설득해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긴 뒤 생긴 자금 1억원으로 유유출판사를 창업했다.

‘작은 출판사’의 꿈을 이룬 뒤

[人사이드 人터뷰] 조성웅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만나고 싶은 독자를 만나기에 행복"
조 대표는 출판사 이름 ‘유유’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눈물을 나타내는 이모티콘 ‘ㅠ.ㅠ’, 두 번째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유유(悠悠), 세 번째는 당나라 시인 최호의 시 ‘등황학루(登黃鶴樓·황학루에 올라)’ 중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흰 구름만 천년을 두고 공연히 한가롭다)’에서 따온 것이다. “사실 유유란 이름 자체가 좋았습니다. 발음하기도 쉽고, 기억도 잘 나고요. 의미의 이유는 어떻게 붙이든 다 말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언제냐”고 물었다. 조 대표는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만나고 싶은 독자들을 만나는 게 행복하다”며 “그리고 그와 똑같은 이유로 제일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모든 책임을 제가 홀로 짊어져야 하거든요. 그건 누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유를 얻는 대신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셈이죠.”

조 대표가 유유출판사를 운영하며 내세우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고전, 두 번째는 공부, 세 번째는 중국이다. 그는 “고전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중국은 국내에서 제대로 된 중국 관련 콘텐츠를 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떠올린 키워드였다”고 설명했다. 또 “공부는 매우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말이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가장 잘 붙들 수 있는 단어”라고 덧붙였다.

“1인 출판사는 브랜드가 정말 중요해요. 어떤 콘텐츠를 내놓느냐도 중요하지만 출판사 자체가 지닌 브랜드의 특수성을 일관적으로 가져가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유유의 책 중 두꺼운 양장본은 하나도 없어요. 휴대하기 편한 사이즈로 돼 있죠. 본문용 종이 역시 재생지를 쓰고요. 독자에게 책의 겉모습만 봐도 ‘아, 이거 유유에서 나온 거구나’ 생각하도록 제작해야 개성을 살릴 수 있죠.”

조 대표는 “난 불특정 다수를 위한 책은 내놓을 생각이 없다”며 “책을 꾸준히 보는 독자가 유유의 주 타깃층”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베스트셀러만 좇아서 띄엄띄엄 책을 읽는 독자는 마케팅 대상에서 제외했어요. 작은 출판사다 보니 대형 출판사처럼 마케팅 망을 촘촘하게 짤 수 없거든요. 그 흔한 책 홍보 보도자료나 서평 한 번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와 읽을 수 있도록 꾸미자’고 마음먹었죠. 그러려면 콘텐츠를 더욱 정성스럽게 기획해야 합니다.”

그는 “책을 열심히 읽는 독자들은 정말 냉정하고 까다롭다”며 “독자 수준을 고려해 번역과 교정, 일러스트 등 모든 과정을 더욱 꼼꼼하게 한다”고 전했다. “제가 죽어도 제가 제작한 책과 정신은 남잖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부끄럽지 않게, 처음과 끝이 같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다행히 저와 함께 작업하는 편집자, 책 디자이너 등 여러 프로가 함께해줘서 영광이죠.”

유유출판사에서 출판한 책 중 가장 히트를 친 책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다. 1만5000여부가 팔렸다. 조 대표는 “우리같이 작은 회사에서 그 정도면 초특급 인기를 끈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출판하는 책 대부분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우리 출판사가 추구하는 책의 종류 자체가 유행을 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분야도 아니잖아요. 돈을 많이 벌겠단 생각으로만 하면 이 일 못 해요. 다만 식구들 먹여 살릴 수는 있어서 다행이죠.”

“출판 문외한에겐 창업 권하지 않아”

조 대표는 1인 출판사 창업에 대해 “‘작은 출판’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는 자기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기술이 많이 발달했고, 출판업의 진입 장벽이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사는 등록제거든요. 창업 비용도 다른 업종에 비해 적게 드는 편이고요. 그러다 보니 신생 출판사는 많아지는데, 그만큼 쓰러지는 출판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는 “유유출판사의 경우 책 한 권을 출판할 때 약 1500만~2000만원이 든다”며 “책 한 권만 내고 끝낼 게 아닌 이상 이게 쌓이다 보면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출판업은 막상 들어오면 잔인한 레드오션”이라며 “출판계에서 일해봤다면 1인 출판사 창업을 찬성하지만 출판 문외한에겐 다시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 1인 출판사의 세계…
직원 수 4인 이하…국내 출판업계 약 80%


1인 출판사는 ‘직원 수 4인 이하의 출판사’를 뜻한다. 혼자 기획부터 출판 및 마케팅까지 전부 하기도 하지만 회사 대표와 편집자, 마케터 등 3~4명 체제가 대부분이다.

1인 출판사는 현재 국내 출판업계의 약 80%를 차지한다. 특히 전자책의 등장, 디지털 인쇄기술 발달에 따른 인쇄 비용 절감과 소량 출판 가능, 각종 책 편집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 사용 등 정보기술(IT) 분야 발전에 힘입어 ‘특화된 콘텐츠’를 생산하려는 1인 출판사 수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출판계에선 “1인 출판사는 2년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1인 출판사 시장은 극심한 레드오션으로 알려졌다. 1인 출판사의 성공 요건은 전문성과 정체성 확립이다. 출판사를 창업하기 전 어떤 책을 전문으로 할지, 어떻게 기존 대형 출판사와 차별성을 둘지, 어떤 독자를 주요 마케팅 대상으로 할지 등을 매우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작가 및 번역가, 출판 에이전시, 편집자 등 인재풀 정보를 알아두는 것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1인 출판사 창업자 중엔 출판업계에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은 사람보다 대형 출판사에서 중간 관리자급 이상으로 일하다가 독립한 이가 많다.

“출판사 창업과 관련해 따로 준비된 교육 과정은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출판사 경영과 관련된 전공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직접 부딪쳐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세계란 의미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