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흥미진진 VR방, 왜 한번 가고 말게 됐을까?
[이진욱 기자] 새로운 놀이문화 공간으로 대중화가 기대되던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방이 속 빈 강정 신세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화제성'이라는 강정은 있는데 '콘텐츠'라는 속이 없어 휘발성 체험장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국내에 VR방이 생긴다는 소식이 알려진 건 지난해 중순이다. 이후 수개월의 기다림은 기대감을 더 부풀렸다. 특히 VR방은 게이머(gamer)들에겐 새로운 성지로 불리기까지 했다. PC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로 'A'를 조정하던 게이머가 직접 'A'가 되는 VR 게임은 꿈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롯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게임 환경을 제공하는 VR방은 금방이라도 PC방의 영광을 재현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기대는 거기까지였다. 사용자를 끌어당길만한 콘텐츠가 없어 대중화되기에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지난해 8월을 시작으로 서울의 강남과 홍대 지역을 비롯해 부산, 대구 등 곳곳에 VR 게임방이 들어섰다. 개장 초기엔 제법 사람이 몰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길은 뜸해졌다. 한번 방문한 사람들의 재방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강남에 위치한 VR방을 다녀온 임재웅 씨(34)는 "VR방이 궁금해 서산에서 서울까지 왔지만 기대 이하였다.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는 PC보다 높았지만 게임 자체 퀄리티가 낮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을 시작으로 서울의 강남과 홍대 지역을 비롯해 부산, 대구 등 곳곳에 VR방이 들어섰다. 사진은 강남역 인근에 개장한 VR플러스.
지난해 8월을 시작으로 서울의 강남과 홍대 지역을 비롯해 부산, 대구 등 곳곳에 VR방이 들어섰다. 사진은 강남역 인근에 개장한 VR플러스.
◆ 사용자 이끌 핵심 VR 콘텐츠 없어PC방 성공 요인은 '스타크래프트'

전문가들은 VR방 부진의 이유로 킬러콘텐츠(killer contents) 부재를 꼽는다. VR방의 대중화를 위해선 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꿀만큼의 영향력을 지닌 매력적인 핵심 콘텐츠가 필수적이지만, 현재로선 없다는 데 그들은 공감한다.

이러한 현상은 VR 분야 최대 강국인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중국 VR 시장은 침체된 분위기다. 지난달 미국 시장조사 업체 슈퍼데이터는 중국의 2016년 VR방 현황 백서를 인용해 중국 전역의 VR방 3000여곳 중 수익을 내는 곳은 약 3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슈퍼데이터는 "베이징 중심가의 VR방에도 손님이 거의 없다. 독창적이고 매력있는 VR 콘텐츠가 부족한 탓에 VR방을 처음 접해본 소비자들이 재방문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전했다. 중국의 VR방 역시 콘텐츠 부족으로 휘발성 체험장소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다.

콘텐츠의 중요성은 PC방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국내에 PC방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대중화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스타크래프트'라는 킬러콘텐츠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PC방은 스타크래프트를 위한 장소였고 PC방을 가자는 말은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가자는 말과 동일시됐다. 이후 침체기를 겪던 PC방의 제2부흥기를 이끈 것 역시 컨텐츠인 리그오브레전드(LOL)였다. 이를 고려하면 중독성 있는 콘텐츠는 게임방 대중화를 위한 필수 요건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성인용 콘텐츠 제작사 소프트온디멘드는 최근 도쿄 아키하바라에 'SOD VR'을 오픈했다. 사진출처:아키바 PC워치
일본의 성인용 콘텐츠 제작사 소프트온디멘드는 최근 도쿄 아키하바라에 'SOD VR'을 오픈했다. 사진출처:아키바 PC워치
"성인 콘텐츠보다 일반 콘텐츠 중심의 시장 확대 바람직"

대표적인 콘텐츠가 없으니 VR방 홍보에도 한계가 드러난다. VR 업계 관계자들이나 얼리어답터가 아닌 이상 대다수 대중들은 아직까지 VR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작 VR에 대해 알리려고 해도 막상 대중에게 VR을 홍보할 '뭔가'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며 "현재 대중에게 VR은 그냥 가상현실게임 정도로 비칠 것"이라고 말했다.

VR의 최대 수혜자가 성인 영상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는 VR방 대중화의 방해 요소로 지목된다. 혼자 화면을 볼 수 밖에 없는 HMD(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 특성상 성인 콘텐츠와의 접목은 예정된 수순이다.

이미 일본에선 성인용 VR방이 화제다. 일본의 성인용 콘텐츠 제작사인 소프트온디멘드(SOFT ON DEMAND, SOD)는 최근 도쿄 아키하바라에 'SOD VR'을 오픈했다. SOD VR에는 완전 방음이 되는 개별 공간에 PC, HMD와 같은 VR 감상용 하드웨어가 준비됐다. 침대식 소파에 앉아 SOD에서 제작한 VR 콘텐츠의 감상이 가능하다.

이처럼 VR방이 정착하기도 전에 성인 영상이 VR방의 대표적 콘텐츠나 홍보 수단이 될 경우, VR방은 음성적인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일반 VR 콘텐츠가 주류가 되어 전체 시장 규모를 확대시키는 게 바람직한 형태라는 주장이다.

기술적 문제로 인한 멀미 증상도 문제다. VR게임은 몸이 움직이는 만큼 가상의 시야가 똑같이 움직이지 않아 어지러움을 유발한다. VR게임에서 어지러움 증상을 방지하려면 PC게임의 3배인 초당 90프레임을 처리해야 한다. 현재 업계에서는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화면의 속도를 조정하는 기술이 개발중이다.

VR방에 대한 법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도 대중화에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유사한 사업인 PC방 관련 법을 도입하고 있지만 PC앞에 앉아서 즐기는 PC방과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서서 플레이하는 VR방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VR 전문가는 "현재 VR 콘텐츠로 VR방의 대중화는 어렵다.VR 콘텐츠가 다양해지려면 앞으로 최소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VR 컨텐츠가 다양해진다는 가정하에 2018년 상반기 정도면 VR방 보급화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시선+] 흥미진진 VR방, 왜 한번 가고 말게 됐을까?
■VR (가상현실)

virtual reality는 컴퓨팅 그래픽 등 인공기술로 구현한 가상의 세계. 3차원(3D) 영상은 특수 안경으로 입체감과 원근감을 느끼는 ‘착시 효과’를 이용한다. VR 영상은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헤드셋을 쓰고 관람한다. 3D 영상보다 몰입감이 훨씬 높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