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Univer+City', 도시를 살리는 상생모델
기나긴 세월의 인류 역사에서 큰 강물처럼 잔잔하게만 흘러왔던 인간의 삶은 19세기 초에 일어난 산업혁명을 변곡점으로 크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삶의 기본인 의식주는 물론이고 인간의 가치관과 사고방식까지 바뀌었는데, 이런 변화는 주로 도시의 발달과 함께 이뤄졌다. 산업혁명 후 지난 200여년 동안 계속된 문명발전은 도시의 생성과 팽창 과정이다.

기계의 등장으로 대량생산이 이뤄지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고, 이들이 형성한 대규모 시장은 도시를 다시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로 만들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사람들을 계속 도시로 불러들였다. 이에 따라 공기 및 식수의 오염 그리고 쓰레기 처리 등 많은 어려움이 야기됐지만 이런 문제들 역시 기술로 상당 부분 해결되면서 도시는 오늘날에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의 경우 1800년 런던시 인구는 100만명이 채 안 됐지만 1850년에는 이미 250만명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현재는 900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지구 어느 대륙에 위치했건 도시의 발전 과정엔 오르내림이 있게 마련이며, 이는 당연히 도시가 지닌 산업경쟁력과 관련된다. 미국 북동부 오대호(五大湖) 주변의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등은 1970년대까지 각각 북미의 자동차와 철강 대부분을 생산하면서 제조업의 심장부로 불리던 곳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해당 산업들은 경쟁력을 잃었고 그 결과 이 지역은 공장설비가 모두 녹슬고 말았다는 의미로 ‘러스트 벨트(Rust Belt)’라 칭해졌다. 직업이 없어지면서 당연히 인구도 감소했고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하지만 지난 10~20년 사이에 러스트 벨트의 많은 도시들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오히려 이 지역을 모든 측면에서 따사로움을 즐길 수 있다는 ‘선 벨트(Sun Belt)’라 부르고 있다. 쇠락했던 이들 도시는 무슨 힘으로 복원되고 있을까? 정보산업과 전통 제조업이 결합하면서 전체적인 산업경쟁력이 증진됐고 아울러 서비스산업이 발전한 것 등이 그 요인이지만 도시 회복의 핵심은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대학의 가치창출(價値創出) 역할이었다.

실제로 러스트 벨트에 속해 있던 도시로서 최근 미국의 전체 평균보다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곳은 모두 아홉 개 도시인데, 그중 여섯 곳, 즉 밀워키, 앤아버, 매디슨 등에는 주요 연구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학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가치를 만들어 내면 산업은 이를 이용해 경쟁력을 높였고 그 결과 도시는 활력을 다시 찾았다. 대학과 산업의 긴밀한 협력 그리고 이를 이어주는 지방 및 중앙정부의 역할은 도시 재생(再生)의 핵심이다.

울산과 포항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산업도시인데 조선, 자동차, 철강 등 중공업 분야에서의 예전 같지 않은 경쟁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울산과 포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업도시가 마찬가지 상황인 것이 안타깝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울산 및 포항에서는 두 도시의 시청과 상공회의소 그리고 울산대, UNIST(울산과학기술원), 한동대, 포스텍 등 지역의 대학들이 함께 ‘Univer+City’라는 모임을 만들어 대학과 도시의 상생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해 두 번째 행사부터는 경주시도 동참해서 한반도 남동지역을 아우르는 소위 ‘해오름 도시동맹’과 이 지역의 대학들이 구체적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성과를 맺어 이 도시들이 러스트 벨트를 거치지 않고 모두가 희망을 이야기하는 ‘선 라이즈 벨트(Sun Rise Belt)’로 빠르게 전환되길 기원한다. 틀림없는 사실은 이제는 대학들이 소속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에 주어진 역할은 교육과 연구만이 아니라 여기에 바탕을 둔 사회·경제적 가치창출이다. 21세기의 지식산업 경쟁력 확보에 대학이 기여해야 한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