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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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낙서.’ 미술전시기획자인 최환승 미노아아트에셋 대표(52)가 지난해 12월9일부터 오는 2월26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여는 전시회 이름이다.

이 행사는 말 그대로 ‘거리의 낙서’, 그라피티를 국내 처음으로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이다. 참여 작가 면면은 매우 화려하다. 바스키아, 키스 해링과 더불어 ‘미국 1세대 그라피티 운동 선구자’로 추앙받는 크래시의 화려하고도 따뜻한 그림, ‘흘러내리는 명품 브랜드 로고’ 시리즈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제우스, LG전자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존원, 각국 글자를 형상화한 추상적 작품의 라틀라스, 특유의 스텐실 기법을 통해 그라피티를 회화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 영국의 닉 워커, 미국 출신 그라피티 아티스트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활동 중인 셰퍼드 페어리, 사진과 그라피티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는 프랑스의 JR 등 일곱 명의 쟁쟁한 아티스트가 한자리에 모였다.

미술계 한파 속에서도 ‘위대한 낙서’는 미술 애호가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연일 관객이 몰리고 있다. 최 대표는 “평일에는 약 400명, 주말엔 800~1000명 정도가 온다”며 “거리의 미술인 그라피티가 미술관에서 생생히 호흡하도록 노력한 게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대표에겐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 3년 전만 해도 그는 잘나가는 외국계 보험사 상무였다. 게다가 이번 전시회는 그가 2014년 미노아아트에셋을 창업한 뒤 첫 번째로 연 것이다. “금융맨으로 30년 가까이 살았지만, 미술전시기획자로는 완전 초짜죠. 이쪽 사람들은 저를 ‘혜성 같다’고들 해요. 하지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서울서예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처음에는 수줍어하다가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 맨’에서 전시기획자로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최 대표는 27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아델파이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그후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16년 동안 금융 브로커로 활동했다. “뉴욕 할렘가에 주식 영업도 하러 다니고, 기업 인수합병(M&A) 실무작업에도 참여하고 이런저런 일을 했죠. 나중엔 악사USA의 뉴저지주, 롱아일랜드주 총괄담당 임원을 맡기도 했어요.”

2009년 알리안츠생명 임원으로 발탁되면서 귀국한 뒤 9년 동안 보험업계에 몸 담았다. 그러던 중 정년을 몇 년 남기지 않고 돌연 사직서를 냈다. 최 대표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말린 건 사실”이라며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인생 후반기엔 남은 인생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노아아트에셋은 제 퇴직금을 모아서 세운 회사입니다. 고액 연봉을 받으며 금융사 임원으로 별 탈 없이 잘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미술전시기획자가 되겠다고 나섰을 때 다들 ‘미친놈’이라 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최 대표는 “예술품에 대해 ‘오라(aura)’가 있다’고 할 때 그 ‘오라’란 말이 무슨 일본 속어인 줄 알았다”며 “처음엔 미술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문외한이었지만 해외 여러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직접 작품을 보고, 설명을 듣다 보니 보는 눈이 조금씩 생겼다”고 말했다. “저는 한 박물관을 몇 번씩 다시 찾아가요. 같은 전시회, 같은 그림이라 해도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거든요. 그 과정에서 작품을 즐기는 법, 예술가를 대우하는 예의 등을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그는 “해외에선 금융사 임직원 출신이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 미술품 경매회사에 많이 취직한다”며 “박물관은 굴뚝 없는 공장과 같은 곳”이라 강조했다. 또 “영미권이나 유럽, 일본 등 여러 선진국에서 미술을 놓고 전시와 경매산업, 브랜드화 경쟁에 나서는 걸 보면 미술을 산업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된다”며 “한국에서는 아직 미술을 너무 고차원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대 뒤 매개자’로 살아간다는 것

[人사이드 人터뷰] 최환승 미노아아트에셋 대표 "금융도 예술도 사람으로 통해 '나'를 내리고, '아티스트'를 올리니 길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미술전시기획자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최 대표는 “무대 뒤에서 모든 걸 총괄하고 조정하는 매개자”라고 답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아티스트들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실감했다”며 “나의 자아를 내려놓고, 예술가를 우대해야만 전시회가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고 전했다. “그라피티를 하는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자유로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웬만해선 같이 공동 전시회를 하려고 하지 않고요. 전시 준비 당시 밀리미터 단위로 작품 배치 조정을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뭔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페인트를 부어버리거나 자기 작품을 찢어버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런 일이 생긴다 해도 전시기획자는 절대 흔들리면 안 됩니다. 아티스트와 전시 공간 관리자, 관객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 사이의 갈등을 잘 조율하고 최고의 전시회를 여는 게 가장 큰 임무죠.”

그는 “금융계에서 일한 여러 경험이 지금의 일을 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중시하는 게 서로 일맥상통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처음도 사람이고, 끝도 사람입니다. 이건 절대로 기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술 창작자도, 무대에 올리는 이도, 작품을 즐기는 관객도 전부 사람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자기 고집만 부리면 100% 실패합니다.”

국내 예술가들 많이 소개하고싶어

최 대표는 “시작이 잘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장기적인 목표는 한국의 신인, 중견 아티스트를 많이 소개하는 것이다. 이들을 해외에 먼저 진출시킨 뒤 역수입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게 소망이다. 최 대표는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을 우선시하지 말고, 예술가들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풍토부터 먼저 조성돼야 한다”며 “한국 아티스트들의 자생력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에선 미술을 ‘배고픈 직업’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아요. 또 여전히 미술 트렌드가 해외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는 게 현실이고요. 그라피티만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작가가 있고, 이토록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된 건 처음이잖아요. 분명히 국내에도 ‘숨은 고수’가 많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유명하다 해도 해외에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명인도 많이 있고요. 이제 한국도 ‘굴뚝 없는 공장’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작업에 조금이나마 동참하는 게 제 소원입니다.”

■ 전시기획자는…

전시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감독 '만능맨'
학력 기준 없지만…대학에 관련 학과도

전시기획자는 특정 내용의 전시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감독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외부에서 의뢰받거나 스스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한다. 기존 전시회를 운영하는 일을 맡을 때도 있다.

미술전시와 공연, 박람회 등 다양한 형태에 따라 내용과 전시 목적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템 선정부터 시장 조사, 기획안 작성, 시행 등을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매우 고단한 작업이다.

전시기획자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학력 기준은 없다. 다만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지닌 사람이 대부분이다. 특히 전시학과나 컨벤션학과, 관광경영학과 등의 졸업자가 많다. 한국전시전문가협회와 한국무역협회 등에서도 전시학, 전시행사경영론, 기획론 등의 교육을 내용으로 하는 전시기획자 양성 과정을 갖추고 있다. 전시기획과 관련된 자격증으로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2002년부터 도입한 ‘컨벤션 기획사’와 코엑스에서 관리하는 자격증이 있다.

주로 전문 전시기업에 소속돼 있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기도 한다. 독립 기업을 세워 일하는 경우도 꽤 많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전시기획자의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