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톈도우(張天斗) 시인은 중국 산시(山西)성 신저우(州) 출신이다. 평생 야인(野人)으로 살았다. 그래서 생몰연대조차 알 수 없다. 스스로 기록하지 않았고 남들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까닭이다. 하지만 바람도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그 역시 마음의 흔적은 남겼다. ‘설죽(雪竹)’이라는 시를 통해 자기 심경의 일단을 내비친 것이다.

선인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사군자(四君子)라고 불렀다. 각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군자 이미지를 대변하는 까닭이다. 겨울 군자인 대나무 잎에 순백의 눈까지 얹혔다. 그래서 이미지는 두 배로 선명하다. 하지만 너무 무겁다. 버거우면 구름도 쉬어갈 때가 있는데 잠깐 허리를 굽힌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자기한계에 대한 고백으로 들린다. 그럼에도 늘 그래왔듯이 꼿꼿이 버텼다. 언젠가 겨울 바람이 쌩하고 지나가며 털어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날 따스한 햇살이 녹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예푸(冶父)선사는 남송시대를 흔적 없이 살았다. 취미가 ‘금강경 읽기’였다. 모양(相)을 남기지 말라는 가르침에도 나름 충실했다. 꼬장꼬장하기는 장톈도우 선비 못지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상(相)이다. 그래서 때로는 나름의 탄력성을 발휘했다. 서 있기 힘들 때도 머리까지 숙이지는 않았지만 몸을 약간 흔들었다. 그리하여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 한 점 일어나지 않는다(竹影掃階塵不動)”는 시를 남긴 것이다. 움직임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이치가 있음을 간파한 까닭이다.

언젠가 일본 교토(京都)의 아라시야마(嵐山)에 있는 텐류지(天龍寺)를 찾았다. 단풍이 절정인 절 주변의 풍경과 달리 뒤편에 있는 대나무 숲에 발을 내디뎠을 때, 한순간에 가을이 사라졌다. 사시사철 푸른 대밭에서 계절이란 별다른 의미가 없다. 하지만 눈이라도 내린다면 겨울 세계임을 알려줄 터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