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일본 국력이 한국보다 강해지는 이유
한국인이 일본을 떠올릴 때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악감정, 전범국가면서 진정 어린 반성도 않는다는 거만함 등이 자리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일본을 좋게 얘기하면 욕을 듣기 십상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개인 감정과 국익의 구분이다. 한바탕 분풀이한다고 해서 국력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내치는 감정이 자칫 국력을 소모해 일본에 또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미국과 유럽이 들썩거리는 지금 일본은 국가 입지를 착착 다져가는 인상이다. 국제 정치경제, 군사기술 연구, 정경(政經)협력을 들어 일본 국력이 한국을 저만치 따돌리고 있음을 가늠해보자.

정권이 바뀌고 난 직후는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강할 때다. 정치단수가 높은 아베 신조 총리는 작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다음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 확신했다”고 치켜세우며 실리 외교를 구사했다. 일본 경제인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베 총리보다 며칠 앞서 트럼프를 만난 손 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 사장은 미국 내 투자 총액 500억달러, 고용창출 5만명을 약속하며 배포 큰 경제외교를 펼쳤다.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도 지난 9일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미국 사업에 앞으로 5년간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일본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이처럼 국익과 먹거리를 위해 분투하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의 국제 정치와 외교는 마비돼 있다.

요즘 들어 일본 학계에서 ‘군사연구’ 논의가 일고 있어 꺼림칙한 낌새가 감지된다. 과학자 대표기관인 일본학술회의는 그동안 ‘군사 목적의 과학연구는 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표명해왔고 이것이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운영 방침처럼 돼 있었다. 그러다 2015년 일본 방위성이 ‘안전보장기술 연구추진제도’를 마련하자 학계의 흐름도 변하고 있다. 오니시 다카시 일본학술회의 회장은 ‘전쟁을 피하는 군사연구’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아사히신문 1월12일자). 국가기밀과 직결되는 군사기술 연구는 일단 시작되면 발을 빼기 어렵다는 속성이 있다. 일본이 군사강국으로 나아가겠다는 냄새가 풀풀 난다. 자체 군사력이 강해지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발언력도 커질 것이다.

아베 정부는 ‘경제가 좋아져야 정치도 안정된다’는 입장이다. 경제계도 경제 우선을 제언한다. 앞으로도 “정경이 협력해 국력을 키워가자”고 화답할 것이다. 일본 경제계를 아우르는 게이단렌(經團連)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일본호라는 배를 두고 선장과 기관장이 싸우거나 비판할 겨를이 없다”며 올 재팬(all Japan)의 일치단결을 호소한다. 최순실 게이트에 휩싸여 오리무중인 한국의 전경련과는 딴판이다. 일본의 정경 ‘협력’을 한국에서 잘 쓰는 ‘유착’이라는 식으로 파악한다면 삐뚤어진 해석이다. ‘국력증강’이라는 구호 앞에선 정치가도 경제인도 토를 달지 않고 협의하는 곳이 일본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에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구절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구절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일본인이다. 이들에게는 “전체를 휘어잡겠다”는 발상보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데 삶의 중점이 두어진다. 특히 모두 함께하는 일에는 반항하지 못하는 쪽으로 길들여져 있다. 그들 심리 묘사로 “빨간 신호라도 모두 함께 건너가면 두렵지 않다”는 말이 회자된다. 곰곰 생각해보면 섬뜩한 말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내가 길을 만들어 가겠다”는 용기도 있겠지만 그것이 도리어 불협화음을 낳고 국력 증진에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