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사회 역행' 단체협약 수년째 개정 안 해
공정사회 외치는 '귀족 노조' 비판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현대판 음서제도'로 불리는 직원 자녀들을 '고용 세습'할 수 있는 단체협약을 수년째 유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아자동차는 인력 수급계획에 따라 신규 채용 때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명,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로자(25년 이상) 자녀에 대해 채용 규정상 적합한 경우 우선 채용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을 수년 전부터 유지하고 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3월 이러한 단체협약이 "공정한 취업기회가 박탈되고 노동시장 내 격차 확대와 고용구조 악화가 초래된다"며 시정명령을 했다.

그러나 기아차 노사는 지난해 11월 단체협약 협상을 할 때 개정하지 않아 고용 세습이 가능해질 여지를 남겼다.

고용 세습 근거가 되는 이러한 단체협약은 기아차뿐 아니라 상당수 대기업과 공기업 등이 유지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가 직원 자녀 채용 규정이 담긴 단체협약 개정에 부정적이라는 입장이어서 '귀족 노조'라는 비판과 함께 대기업에서 ''현대판 음서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음서제도는 고려시대 때 5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무시험으로 관리가 되는 제도다.

법원도 민주노총 등의 주도로 단체협약에 포함된 고용 세습에 대해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2009년 정년퇴직한 A씨는 2011년 폐암으로 숨졌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다.

유족들은 "단체협약에 따라 A씨 자녀 중 1명을 채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하던 2008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년 만에 숨진 B씨는 금형 세척제에 노출돼 병에 걸렸다고 인정돼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유족들은 단협을 내세우며 B씨 자녀를 채용하라고 주장했다.

A씨 사건을 심리한 울산지법은 "업무능력에 대해 판단하지도 않은 채 조합원 가족을 채용하는 것은 인사권을 침해하는 만큼 단체협약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단체협약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배치된다"며 "경쟁 없는 채용으로 사라진 하나의 일자리는 누군가 뼈를 깎는 인내와 단련으로 실력을 키워 차지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B씨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도 "유족을 채용하도록 단체협약으로 제도화하면 사실상 귀족 노동자 계급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청년실업이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20~30대 청년들이 기회 불공정성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가 유례없이 커지고 있다"며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어 평등에 대한 기준은 종전보다 엄격한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시민 정모씨는 "노조가 정치, 사회 각 분야에서는 공정사회를 지향하자고 외치면서 고용 세습이 가능하도록 하는 단체협약을 고치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정의사회에 역행하는 단체협약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연합뉴스) 전승현 기자 shch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