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두 엘리트 경제관료 집단의 관계는 항상 묘하다. 뿌리가 ‘재정경제부’로 같아 ‘한 핏줄’이란 의식이 있다. ‘호형호제’하는 고위급 인사도 많다. 하지만 정책과 관련해선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주도권을 놓고 자존심 싸움도 치열하다.
기재부 - 금융위, 금융공기업 정책 '샅바싸움'
기재부 관료들은 지금도 금융위가 2015년 2월 발표한 안심전환대출 중심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재주는 우리가 부렸는데 공(功)은 금융위가 다 가져갔다”며 분개한다. 작년 말에도 금융공기업 성과연봉제 시행 시기 때문에 두 기관은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올해도 두 기관은 파워게임을 예고하고 있다. 기재부가 산업은행의 공기업 지정, 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 기능 조정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산은과 정책금융기관 대부분은 금융위의 지휘를 받고 있다. 바꾸려는 기재부의 창과 막으려는 금융위의 방패가 세게 부딪칠 수밖에 없다.

◆산은 ‘공기업’ 지정 검토

기재부는 매년 1월 말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신규 공공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 지정 및 지정해제, 분류 변경 등을 결정한다.

올해 관심은 기타공공기관인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의 공기업 또는 준정부기관 지정 여부다. 수은은 기재부 소관이지만 산은은 금융위 밑에 있다.

기재부 내부에선 ‘공기업으로 올려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지금처럼 기타공공기관으로 남으면 기재부의 공기업 경영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금융위 자체 평가만 받도록 돼 있는데, 기준이 느슨해 최근 몇 년간 조선 해운업체에 대한 대규모 부실 여신에도 A등급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게 기재부 생각이다. 더구나 산은에는 앞으로도 조선 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혈세가 투입될 예정인 만큼 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기재부 판단이다.

준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이 되면 기재부가 예산 편성·집행지침을 제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매년 기재부로부터 ‘현미경’ 경영평가도 받아야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산은의 부족한 경영성과에 대해선 국민이 다 알고 있지 않냐”며 “산은이 그동안 금융위 우산 밑에서 편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산은이 공기업이 되면 부실기업에 대한 산은의 지원이 정부의 직접 지원으로 인식돼 국제사회에서 통상 이슈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한다. 결과적으로 산은의 구조조정 및 벤처 투자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기보·신보 기능조정도 예고

올해엔 정책금융 공공기관 기능조정도 예정돼 있다. 지난해 에너지 공기업 기능조정을 마친 기재부는 올해 금융위 산하 금융 공공기관의 기능조정안에 대해 연구용역을 마치고 세부 검토 중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묵은 숙제처럼 여겨지는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 통합 등 각종 설(說)이 무성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능조정이 무조건 크게 뜯어고치는 건 아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금융위는 기재부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작년 에너지 공기업 기능조정을 놓고 벌인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기싸움이 재현되지 말란 법은 없다.

변수는 있다. 정치 불확실성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대선 국면에서 공기업 기능조정안이 묻힐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조규홍 기재부 재정관리관(차관보)은 11일 “공공기관 기능조정안을 매년 상반기에 발표했지만 올해는 하반기에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기 대선으로 정부가 바뀌더라도 상관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