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반반(潘半)화법' 더 이상 안통한다
대선주자를 대상으로 국정 현안에 대한 견해를 물으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빈칸이 많다. 본격 대선 준비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반 전 총장 측 얘기다. 12일 귀국하는 반 전 총장은 ‘통합’을 메시지로 던진 뒤 설 때까지 정치보다 민생 행보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전략적 모호성’ 기조 아래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정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누구와 손을 잡아야 유리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선뜻 나섰다가 발목을 잡힐 수 있어서다.

대선에 관한 한 반 전 총장의 화법은 모호했다. 2014년 11월 대권 도전설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2015년 4월엔 “(총장)은퇴 후 ‘008 요원’으로 일하거나 아내와 근사한 식당에 가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반기문 정치행로 오리무중

지난해 5월 말 방한 땐 “국민 통합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과대해석을 삼가달라”고 물러섰다. 지난해 말 주미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한 몸을 불살라서라도…”라고 했다. 대선 출마에 대해선 “광범위한 사람과 의견을 교환한 뒤에…”라고 미뤘다. 그래서 ‘반반(潘半)화법’ ‘기름장어’라는 소리가 줄곧 뒤따랐다.

반 전 총장의 귀국 뒤 정치적 행로는 오리무중이다. 신당 창당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을 도와줄 제3당을 언급했다. 어느 당을 얘기하는 건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광범위한 사람과 만날 것”이라는 말 속에 제3지대를 아우르는 ‘빅텐트’를 예측할 수 있다. 정치권에선 유력 대선주자가 정당을 창당하지 않는 데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기존 정당에 얹혀 숟가락만 올리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정체성도 모호하다. 범보수 후보로 거론돼 왔지만 캠프에선 중도층 잡기에 나서고 있다. ‘따뜻한 시장경제’를 내세워 법인세 인상, ‘버핏세(부유층의 자본소득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반기문식 ‘좌클릭’이다. 대구·경북(TK)·보수와는 거리 두기에 나섰다. 반기문 캠프 측은 “외교는 보수, 경제·사회는 중도·진보에 가깝다”고 했다.

12일 귀국…메시지 주목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반 전 총장에 ‘연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앞길에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 동성결혼을 지지한 것은 종교계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지지세력들을 미리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호가호위’할 수 있다. 캠프 내에서도 주변 사람을 잘 내치지 못하는 게 반 전 총장의 단점이라고 우려한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한·일 위안부협정 등을 둘러싸고 외교·안보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휘발성이 큰 현안, 검증 문제에 대해 반 전 총장은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대선 깃발을 든 이상 ‘반반화법’은 통하지 않는다. 드골은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머슴 행세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치세계에서 진흙탕 싸움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박찬종 전 의원은 성층권에 있던 반 전 총장의 진가는 흙바닥에 내려와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12일 귀국하는 반 전 총장의 첫마디가 궁금하다. ‘왜 반기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통합’이라는 큰 화두만 갖고는 통하지 않는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