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통상압력] 한국산 수입규제 17년 만에 '최악'…글로벌 보호무역에 속수무책
세계로 퍼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가 ‘수출 한국’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 저성장과 철강 등 특정 산업 공급 과잉, 정치적 압력 등이 맞물린 결과다. 자국우선주의로 돌아선 미국은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 칼날은 이미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업체 등 국내 주요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산 수입규제 조사 48% 늘어

8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세계 각국이 지난해 한국산(産) 제품의 수입을 규제(반덤핑 관세·상계관세·세이프가드)하기 위해 새로 조사에 들어간 품목은 40건에 이른다. 아시아 외환위기로 통상마찰이 심했던 1999년(50건) 후 17년 만에 최대다. 2015년(27건)보다는 48.1% 늘어난 수치다.

한국을 대상으로 한 수입국의 직접적인 무역규제조치는 유럽 재정위기가 터진 2011년 이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지면서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 조치를 남발하고 있어서다. 수입규제 조사 착수 건수는 2011년 8건에서 2014년 24건으로 세 배 늘어났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회복 지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보호무역주의 표방 등이 겹치며 자유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며 “미국, 중국은 물론 인도, 베트남 등 세계 각국이 자국 내 무역 규제를 담당하는 무역규제기관 권한을 대폭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정 기업이나 국가만 타깃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반덤핑 관세 조사가 주된 규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국을 상대로 한 세계 각국의 반덤핑 관세 조사 개시는 30건으로 2015년(17건)보다 76.5% 증가했다.

◆G2 통상 전쟁에 진퇴양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통상압력 증가는 한국에 커다란 위협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5.9%(2015년 기준)에 달한다.

미국 신정부가 오는 20일 출범함에 따라 중국과의 통상전쟁이 본격화되면 한국이 직접적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통상전쟁에서 타깃으로 삼는 철강과 화학산업에서 국내 기업들이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제 연구위원은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산업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철강과 화학, 섬유산업이 받는 수입 규제가 전체의 82.6%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칼날이 한국을 직접 겨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날 주최한 시카고테이블에 참석한 스티븐 데이비스 시카고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직접적인 무역장벽을 세우기 시작하면 세계 경제는 ‘거대한 무역전쟁’에 빠져들게 되고 한국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미국 대통령의 권한으로 추진하고 집행할 수 있는 무역정책 수단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중국 정책이 일본, 한국, 대만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수출 위협하는 지정학적 위험

사드 배치나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문제 등으로 커지고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이 통상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한·일 간 외교 갈등이 수출에 미치는 악영향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며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에 더해 수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보복이 나올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한국이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수입 규제를 많이 받는 나라지만 그간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에 공을 들이며 관련 대응이나 인력 투자 등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정부가 미국에 메시지를 주는 등 국제무대에서 좀 더 전략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반덤핑관세

anti-dumping duties. 외국 상품이 정상가격 이하로 수입됐을 때 수입국 정부가 정상가격과 덤핑가격의 차액만큼 부과하는 특별 관세를 뜻한다. 수입국 업체들이 제소하면 수입국 무역당국이 조사를 통해 해당 제품의 반덤핑 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한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