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청 12층 하늘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시민들.
서울 마포구청 12층 하늘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시민들.
한강과 마포구 하늘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밤이 되자 불을 밝힌 상암 월드컵경기장과 한강변 야경(夜景)을 앞에 두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야외에 마련된 테라스에선 정장 차림의 직장인 남녀가 책을 겨드랑이에 낀 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구청사 12층에 있는 하늘도서관의 풍경이다.

구립도서관이 변신하고 있다. 낡은 책상과 손때 묻은 책들, 열람실을 가득 채운 수험생과 매점에서 파는 라면 등 종래 우리가 알던 도서관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다. 야경 명소로 떠오른 도서관부터 만화 마니아들의 성지(聖地)가 된 곳까지 시민들이 인터넷 블로그에 방문을 ‘인증’할 정도다.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출퇴근길 지하철역에 마련된 자동기기를 통해 자유롭게 원하는 책을 빌려보는 ‘공간파괴’ 도서관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진화하는 구립도서관

[구청 리포트] 책 배달은 기본, 한강 조망에 웹툰 작가 특강까지!
마포구는 2013년 11월 도서관을 새롭게 단장했다. 예전에는 각종 행사가 열리는 대강당으로 쓰이던 자리였다. “청소년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며 박홍섭 마포구청장이 구청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를 도서관으로 꾸몄다.

하루 1000명이 넘는 시민이 426㎡ 크기의 하늘도서관을 찾는다. 2015년 마포하늘도서관을 찾은 방문자 수는 78만4000여명. 면적이 5배나 넓은 동작도서관이나 구로도서관과 비슷한 수준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시민들이 가장 오기 편한 곳을 도서관으로 꾸민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생업이 바빠 도서관을 찾기 힘든 ‘문화소외계층’을 위해 책을 배달하는 구청도 있다. 성북구는 시장 상인이나 대형마트 직원 등을 위한 책배달 서비스를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월 2회 정릉도서관은 근처 재래시장인 아리랑시장을, 달빛마루도서관은 인근 이마트와 상가를 각각 돌며 예약받은 책과 맞춤형 추천도서를 배달한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책배달 서비스로 상인 200여명이 한 해에 1000권 정도를 빌리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지하철역에 설치된 책 대출 반납 시스템을 통해 출퇴근길에 쉽게 책을 빌려볼 수 있게 한 ‘U-도서관’ 역시 인기다. 도서관이 시민에게 찾아간다는 점에서 책배달 서비스와 같은 맥락이다. 구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도서를 신청하면 2~3일 내에 자신이 선택한 지하철역 무인 대출·반납기로 책이 배달된다. 성북구(7곳) 관악구(5곳) 은평구(3곳) 등이 활발하게 시행 중이다.
어린이들이 서울 은평구 진광동 은평뉴타운도서관에서 웹툰 창작 교육을 받고 있다. 2015년 9월 미디어 특성화 도서관으로 설립된 이곳은 웹툰을 비롯해 영화 제작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은평구청 제공
어린이들이 서울 은평구 진광동 은평뉴타운도서관에서 웹툰 창작 교육을 받고 있다. 2015년 9월 미디어 특성화 도서관으로 설립된 이곳은 웹툰을 비롯해 영화 제작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은평구청 제공
특정 주제에 초점을 맞춘 테마 도서관도 등장했다. 은평구는 웹툰·영화 등 미디어에 초점을 맞춘 도서관 네트워크를 조성 중이다. 2015년 9월 미디어 특성화 도서관인 은평뉴타운도서관을 개관했다. 만화전문 작은도서관인 포수마을도서관, 녹번도서관에 이은 은평구 내 세 번째 만화도서관이다. 이곳에선 매주 웹툰작가들의 특강이 열리고 웹툰작가 양성 과정도 운영된다.

“내실 있는 도서관 늘려야”

서울 마포구청 12층 하늘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시민들.
서울 마포구청 12층 하늘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시민들.
이 같은 구립도서관의 혁신은 지금까지 구청들이 내실 없이 도서관 숫자 늘리기에 급급해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도서관이 시민 삶의 질과 직결된 복지지표로 주목받으면서 일선 구청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도서관 숫자를 늘려왔다. 2011년 87곳이던 구립공공도서관은 2016년 123곳으로 41% 증가했다. 서울시가 2012년부터 ‘집에서 10분 거리 도서관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장서수 1000~3000권 수준의 ‘작은 도서관’도 크게 늘었다. 2011년 664곳이던 서울 시내 작은도서관은 지난해 965개에 이른다.

하지만 도서관별 방문자 수나 대출도서 수는 오히려 줄었다. 국가도서관통계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서울 시내 작은 도서관 세 곳 중 한 곳(861곳 중 307곳)이 하루 10명도 찾지 않은 채 방치됐다.

한 구청 관계자는 “도서관 지원 정책으로 도서관의 절대적 개수를 늘렸지만 도서관 향유층을 늘리는 데는 실패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일선 구청들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느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 도서관 변신의 발단이 됐다.

전문가들은 내실 있는 도서관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기영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해서 좋은 도서관인 것은 아니다”며 “공공도서관의 질적 개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 구은서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