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쇼 CES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중국 TCL이 기자들을 대상으로 프레스 콘퍼런스를 열고 새로 개발한 TV를 소개하고 있다. EPA 제공
세계 최대 전자쇼 CES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중국 TCL이 기자들을 대상으로 프레스 콘퍼런스를 열고 새로 개발한 TV를 소개하고 있다. EPA 제공
두렵기까지 하다.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7’에서 중국 굴기(起)의 현장을 확인하고 나서다. 전시장 곳곳은 중국 기업들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스마트폰 기업인 화웨이와 샤오미, 가전업체인 TCL 하이얼 창훙 하이센스, 인터넷 기업인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중국계 전기차업체인 패러데이퓨처, 드론의 DJI 등…. 몇 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기업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드론, 3차원(3D)프린터 등의 첨단 기술로 무장해 주역으로 부상했다. 이날 미디어행사에 나온 스티브 퀘니그 마켓리서치(미국 시장조사업체) 이사는 “CES 2017의 주제인 혁신에 가장 부합한 곳이 바로 중국 기업들”이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3~4일 이틀간 열린 미디어행사에서 단연 주목받은 곳은 중국 기업이었다. 3일 열린 패러데이퓨처의 자율주행 전기차 공개행사에는 각국에서 몰려온 1000여명의 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4일 화웨이 TCL 등 중국 기업들의 미디어설명회에도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다녔다.
중국 제로 제로 로보틱스의 셀카드론 ‘호버 카메라 패스포트’.
중국 제로 제로 로보틱스의 셀카드론 ‘호버 카메라 패스포트’.
중국 기업들은 수적으로도 압도했다. 이번 전시회 참가업체 3800여개 가운데 3분의 1인 1300여곳이 중국 기업이다. 사우스홀에 마련된 드론 전시관은 아예 중국 업체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특히 중국 ‘정보기술(IT) 벤처 요람’으로 떠오른 광둥성 선전 기업들이 대거 참가했다. CES 참가 업체를 소개하는 책자에 선전이라는 이름을 단 회사만 4쪽에 이를 정도다.

중국 스타트업 로열의 플렉시블 전화기(왼쪽)와 스마트 백팩.
중국 스타트업 로열의 플렉시블 전화기(왼쪽)와 스마트 백팩.
CES가 미국 일본 한국 기업들의 경연장이란 건 과거 얘기가 됐다. 가장 큰 전시장인 테크 이스트 중앙홀에는 삼성 LG 소니 등과 나란히 중국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 화웨이 TCL 하이얼 창훙 하이센스가 마치 삼성과 소니를 에워싸듯 주위에 대형 부스를 차렸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기업인 화웨이는 CES 주인공 같다. 컨벤션센터 곳곳에 붙은 대형 옥외 광고판은 화웨이가 독차지했다. 인근 메리어트호텔은 화웨이의 스마트폰 신제품을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로 뒤덮였다.

개막날인 5일에는 기조연설자로 리처드 유 화웨이 최고경영자(CEO)가 나선다. 미국 IT매체 시넷은 “리처드 유가 기조연설에서 AI와 가상현실(VR)을 스마트폰에 접목한 모바일 기술의 미래를 제시할 것”이라며 “화웨이의 미래전략에 대한 IT업계 관심이 뜨겁다”고 전했다.

중국이 선보인 기술과 신제품은 한국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화웨이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뉴 아너’ 시리즈를 공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번 CES에 신형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내놓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중저가폰으로 시장을 잠식해온 화웨이가 프리미엄 시장까지 노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이얼 스카이워스 등 가전업체들은 IoT와 AI 기능을 접목한 스마트 혁신 제품을 내놓았다. 행사장에서 만난 국내 전자업체 한 CEO는 “중국 가전업체들이 아직은 기술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한국에 비해 3년가량 뒤져 있지만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앞지를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드론 전시관에선 중국 기업들의 압도적 우위가 확인됐다. 드론 세계 1위인 DJI는 전시관에 가장 큰 부스를 차렸고, 그 주위에 ‘제2의 DJI’를 노리는 중국 드론업체들이 편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DJI는 ‘오즈모 모바일 실버’와 항공 지도 앱인 ‘그라운드 스테이션 프로’, 화면 밝기가 높은 ‘모니터 크리스털스카이’ 등 신제품을 대거 공개한다. 국내 드론업체 관계자는 “드론 분야에서는 중국이 메이저이고, 한국 미국 등은 마이너”라며 “중국이 단기간에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정부가 규제를 확실하게 풀어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한 국내 가전업체 CEO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30여년간 중국의 산업화는 선진 제조업의 노하우를 베끼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모방과 추격을 넘어 혁신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

특별취재단 하영춘 부국장(단장), 윤성민 IT과학부장, 정종태 경제부장, 이건호 지식사회부장 김홍열 국제부장, 노경목·강현우·남윤선·이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