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솔밭식당’
서울대 ‘솔밭식당’
서울대엔 48년 역사를 지닌 국밥집이 있다. 관악캠퍼스 한가운데 있는 ‘솔밭식당’이다. 캠퍼스 부지에 골프장이 있던 때부터 장사를 했다. 캠퍼스가 들어선 1975년부터 이 식당은 학생들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10년 넘게 소면은 3000원, 소고기국밥은 4000원을 유지했다. 최종고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전략)솔밭식당에서 채운 원기로/ 이 사회엔 이웃이 있네/ 우리 모두 강물 되어 바다로 흐르며/ 인정을 나누네 그 때 국밥처럼”이란 시(詩)를 쓰기도 했다.

서울대 교수 및 학생들과 고락을 같이해온 솔밭식당이 31일 문을 닫는다. 건물 노후화가 표면적인 이유지만 학내 프랜차이즈 식당이 크게 늘면서 더 이상 수익을 내기 힘들어서다.

대학가 추억의 명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수십년을 학교의 역사와 함께한 노포(老鋪: 대대로 물려내려오는 점포)들이다. 10년 넘게 가격을 올리지 않던 ‘착한 가게’들이지만 임대료 상승과 학생들의 입맛 변화로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경희대 ‘녹원’
경희대 ‘녹원’
◆추억이 떠난 자리에 프랜차이즈

27년간 서울 회기동 경희대 앞을 지키던 전통찻집 ‘녹원’은 지난 7일 문을 닫았다. 산수유차 감잎차 등 전통차를 싸게 팔면서 오랫동안 경희대 학생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곳이다. 스타벅스, 이디야 등 프랜차이즈 카페가 주변 상권을 잠식하면서 학생들이 전통차 대신 커피를 찾자 결국 폐점했다. 경희대를 나온 직장인 최민규 씨(26)는 “선후배와의 추억, 여자친구와의 낭만이 녹아 있는 곳이어서 영업 마지막날 찾아갔다”고 아쉬워했다.

대학 주변은 물론 학내도 프랜차이즈 업체로 도배되고 있다. 대학들은 학내에 유명 프랜차이즈를 경쟁적으로 입점시키고 있다. 민간연구소인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서울 시내 대학에 입점한 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450개에 달했다. 10년 전 서울대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투썸플레이스 파스쿠찌 등 8곳에 이른다. 고려대 중앙광장에도 카페베네 이니스프리 등 브랜드 매장이 빼곡하다. 2005년 대학 내 입점 규제가 풀린 이후 가속화된 현상이다.

학내 명소들은 학교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화여대 중앙도서관 근처에 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름뜰’은 지난해 17년 만에 학교 밖으로 옮겼다. 입찰 경쟁에서 동원홈푸드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운지오’에 밀린 탓이다. 한 서울대 원로 교수는 “대학들이 임대료 수입에 목을 매면서 저렴한 가게보다 대형 프랜차이즈를 선호하고 있다”며 “신세대 학생들의 입맛이 고급화된 것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솔밭식당’
서울대 ‘솔밭식당’
◆관광객들이 찾는 학림다방

서울대 사회과학대 인근에서 2000년 문을 연 전통찻집 ‘다향만당’도 지난 22일 문을 닫을 뻔했다. 이곳을 운영해온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은 “교내 카페시설이 늘고, 커피 소비 문화가 확산돼 전통찻집 이용객이 줄었다”고 폐점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추억이 사라지는 걸 아쉬워한 서울대생 500여명이 반대 서명 운동에 나선 끝에 폐점이 1년 유예됐다. ‘다향만당 살리기 서명운동’을 주도한 홍유정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은 “추억이 담긴 공간이 수익상 이유로 문을 닫는 것을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고 했다.

대학의 낭만이 살아 있는 명소를 지키려는 움직임은 고려대에서도 있었다. 고려대 명물 햄버거 전문점 ‘영철버거’는 프랜차이즈에 밀려 고전하다가 지난해 7월 문을 닫았다. 이후 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고대생들은 지난해 9월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그해 12월 영철버거가 다시 문을 열도록 도왔다.

오랜 세월을 꿋꿋이 버티고 살아남은 곳도 있다. 성균관대 인근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이 대표적이다. 1956년 옛 서울대 문리대 건너편에 문을 연 학림다방은 시인 천상병을 비롯해 김승옥, 이청준, 황지우, 전혜린 등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이곳도 한때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지만 복고열풍 속에 인기드라마 ‘별에서온 그대’ 촬영지로 이름을 알리면서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는 곳이 됐다.

황정환/김형규 기자 jung@hankyung.com